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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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시대 산성.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위치하고 있는 갈월산성(葛月山城)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안성인·홍계남이 의병 수천 명을 모집하여 이 성을 중심으로 싸워 왜군을 대파하였다. 조정에서 이 소식을 듣고 홍계남을 수원부사로 임명했다는 설이 있다. 갈월산성의 건립경위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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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뒷산에 있는 삼국시대 보루 터. 삼국시대에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보루로 추정되며, 남쪽의 엽둔재를 지키는 초소와 같다. 임진왜란 때 안성의 선비 홍계남(洪季男)이 의병을 이끌고 왜군을 막았던 곳이라 전해온다.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5리 엽둔재의 북쪽 산봉우리에 있다. 해발 371.7m의 봉우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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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 막골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장송리 산리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거멈고개는 거멈과 고개로 나뉜다. 전부 요소 거멈이 쓰인 지명은 찾아볼 수 없고, 비슷한 어형인 거멍·거메·거무·거문 등이 쓰인 예는 수없이 많다. 거먹바위·거멍독배기·거멍바우·거멍산·거멍터·거메섬·거무내·거무들·거무섬·거무산·거문들·거문배·거문소 등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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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국토의 70%가 산지인 한반도에서는 예부터 도보나 우마로 산을 넘어 통행할 수 있는 고갯길이 곳곳에 발달하여 중앙과 지방, 지역과 지역 사이를 그물코처럼 연결하였다. 오늘날에는 등산 기지 또는 관광지로서 가치가 크며, 철도의 통과에도 이용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고개는 북한의 함경산맥(咸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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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원삼국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역사와 문화. 고대를 일컫는 데에는 역사학적·정치학적 관점에 따라 다양한 설이 있으나, 한국사에서는 흔히 원삼국(原三國)시대부터 후삼국의 병립기까지를 이른다. 원삼국시대[B.C. 1세기~A.D. 3세기경]는 삼국시대의 원초적인 단계로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성장하고 있었고, 남쪽에는 백제·가야·신라의 모태인 마한·변한·진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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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이곡마을 뒷산에 서식하고 있는 양치식물 고사리목 고란초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 백마강 가 고란사(皐蘭寺) 뒤의 절벽에서 자라기 때문에 고란초(皐蘭草)라는 이름이 생겼다. 사람들은 대개 고란사에서만 자란다고 알고 있으나, 공중의 습기를 받을 수 있는 강가 절벽이나 바닷가 숲속에서도 자라고 있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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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인산리 어지미마을에 있는 들. 고만이들은 고만이와 들로 나뉜다. 고만이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며, 지역에 따라 풀[草]의 일종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고만이들은 고만이뿔로도 불린다. 고만이뿔은 고만이와 뿔로 나뉜다. 뿔은 불의 된소리 어형으로, 아주 이른 시기부터 지명에 사용되어 왔다. 불은 신라어 ‘불[火]’·‘*불[伐]’로 소급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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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조영된 무덤. 고분(古墳)은 사전적 의미로는 옛무덤 혹은 고대에 만들어진 무덤을 말하며, 고고학에서는 개념을 한정하여 선사시대부터 삼국통일 이후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성행하고 고분축조가 쇠퇴한 시기까지의 무덤을 말한다. 고분은 무덤 자체의 양식 및 규모와 부장된 유물의 양상을 통해, 만들어진 당시의 정치·사회·문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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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삼국시대의 진천 지역은 삼국이 접경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배 영역 속에서 삼국의 교육 제도와 문화적 영향을 받았으리라 보여 진다. 고구려는 각 지방에 사립 학교인 경당을 세워 평민의 미혼 자녀들에게 독서와 궁술을 익히게 하였으므로 고구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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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地理志)」에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을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충청도(忠淸道) 진천현(鎭川縣)」 조에는 금물노군은 고구려 지명으로 만노군(萬弩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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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충청북도 진천 서쪽 지역에 있던 백제의 성. 금현성은 550년(백제 성왕 28년, 고구려 양원왕 6년) 백제가 고구려 영토에 있던 도살성(道薩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고구려가 이에 대응해 함락시킨 백제의 성이다. 오늘날의 충청북도 진천군 서쪽이라는 설이 있고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과 전의면의 경계에 있는 금이성(金伊城)이라는 설도 있다. 금현성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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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만노군(萬弩郡) 태수를 역임한 신라의 귀족. 본관은 김해(金海). 일명 김소연(金消衍).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12세손이다. 아버지는 신주군주(新州軍主)를 역임했던 김무력(金武力)이며, 아내는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손녀인 만명부인(萬明夫人)이다. 아들은 삼국 통일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김유신(金庾信)이고, 딸 문희(文姬)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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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출신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끈 장수. 본관은 김해(金海). 가야국 김수로왕의 12세손이며, 아버지는 만로군 태수 김서현(金舒玄)이고, 어머니는 입종 갈문왕인 숙흘종(粛訖宗)의 딸 만명부인(万明夫人)이다. 김유신(金庾信)[595~673]은 609년(진평왕 31)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龍華香徒)를 거느리면서 화랑정신을 수양하였다. 629년(진평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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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 칡목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봉항리 돌목이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돌목이고개는 돌목이와 고개로 나뉜다. 돌목이는 돌목에 접미사 ‘-이’가 붙은 어형이고, 돌목은 ‘돌’과 ‘목’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돌은 여러 가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첫째, 돌[石]로 풀이할 수 있다. 돌은 지명의 전부 요소로 빈번히 사용되어,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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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만뢰산 동쪽에 있는 봉우리. 동망태는 진천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만뢰산(萬賴山)[612m] 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만뢰산은 본래 만노산(萬弩山, 萬奴山)이었는데 만인의 힘을 입었다 하여 일만 ‘만(萬)’자, 힘입을 ‘뢰(賴)’자를 써서 만뢰산으로 개칭하였다 한다. 만뢰산 정상에는 신라시대에 변방을 지키기 위하여 쌓은 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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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계산리 산직말마을과 막골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막골고개는 막골과 고개로 나뉜다. 전국적으로 막골이나 먹골이라는 지명이 매우 많으며, 여기서 먹은 막의 변화형으로 볼 수 있다. ‘막’은 한자 ‘막(幕)’으로 보아 ‘전에 산막이 있던 골짜기’, ‘어떤 사람이 움막을 짓고 살던 골짜기’, ‘막을 치고 도둑을 막은 골짜기’, ‘선비 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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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와 백곡면 대문리 사이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 산성. 만노산성(萬弩山城)은 문헌 기록에 만노성(萬弩城)·만뢰성(萬賴城)·이을성 등으로도 나타나는데, 현재는 만노산성 또는 만뢰산성으로 불린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표기된 바에 따라 이을산성이라 칭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만노산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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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만명의 혼사장애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만명 소저 유폐와 탈출 이야기」는 만노태수로 임명을 받은 김서현(金舒玄) 장군을 따라가려던 만명(萬明) 부인이 아버지 숙흘종(肅訖宗)의 반대에 부딪쳐 외딴 방에 갇히게 되었으나 천우신조로 탈출하여 김서현 장군과 함께 만노로 떠났고 숙흘종도 두 사람 사이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혼사장애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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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두촌리와 음성군 맹동면을 연결하는 고개. 말이장[말이場]은 구말장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추정된다. 구말장은 덕산장의 다른 이름으로, 덕산읍 용몽리 몽촌(夢村)[구말]과 관련이 있다. 몽촌은 조선 광해군 때 문신 채진형(蔡震亨)이 현몽하여 잡은 자리라 하여 붙은 이름으로, 뜻을 풀어 꿈말이라 하였는데 세월이 흘러 구말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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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의 세계상과 인간상을 미적·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 한반도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오면서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미술 문화가 전개되었으며, 이는 남겨진 유물이나 문헌 자료로 확인되고 있다. 진천군의 경우, 통일신라시대까지는 미술 활동의 흔적이 드물지만 고려시대부터는 불교 미술이나 공예 면에서 중요한 자취들을 남겼다. 삼국시대 이후 고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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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 주민의 생활인 동시에 생활의 계속, 또는 반복에서 이룩되어 전승되는 민간 공동의 습속. 민속(民俗)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마다 고유하게 전해 내려오는 생활양식이나 풍습·미신·속담·민담·전설·신화 등을 포함한 구전문학, 그리고 음악·무용 등의 문화 양식을 한데 묶어 이르는 말이다. 사회 집단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다른 사회집단, 더 나아가 집단이 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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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배티마을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상촌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배티고개는 조선시대 반역의 뜻을 품은 신천영(申天永)의 무리와 북병사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의 의병이 싸운 고개인데, 신천영이 패하자 그 고개를 ‘패한 고개’라 하여 패티[敗티]라 하였고, 음이 변하여 배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설은 믿을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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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불교는 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敎祖)로 삼고 그가 설(說)한 교법(敎法)을 종지(宗旨)로 하는 종교이다. 부처의 가르침을 법(法)이라고 하므로 불교를 ‘불법(佛法)’이라고도 하고,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뜻에서 ‘불도(佛道)’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의 내용은 교조인 석가모니가 35세에 보리수 아래에서 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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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남산골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관성리 사자골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사자골고개는 사자골과 고개로 나뉘고, 사자골은 다시 사자와 골로 나뉜다. 여기서 사자는 두 가지로 풀이된다. 첫째, 사직(社稷)의 변화형이다. 사직에서 ‘ㄱ’이 탈락하여 사지가 되고, 2음절 모음 ‘ㅣ’가 1음절 모음 ‘ㅏ’로 인해 사자가 된 것이다. 최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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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길상사(吉祥祠)는 흥무대왕 김유신(金庾信)[595~673]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진천읍 벽암리 508번지[문진로 1411-38]에 있으며, 진천군과 김해김씨 문중이 관리하고 있다. 1975년 2월 2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오르면 입구의 홍살문과 본전인 흥무전(興武殿)을 비롯하여 관리사·내삼문·협문 등 모두 6동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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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 삼덕리 고분은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 산3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산 정상부의 평탄한 지형에 입지하고 있는데, 북서쪽으로는 진천 대모산성(大母山城)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백곡천(栢谷川)이 범람하여 형성한 넓은 들판이 형성되어 있다. 삼덕리 고분과 같은 백제시기의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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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는 식물의 모든 종류. 식물 지리학자들은 식물 분포에 의거하여 전 세계를 37구계(區系)로 구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화일식물구계[華日植物區系]로 분류되고 그 중에서 한국구(韓國區)에 속해 있다. 충청북도는 식물 분포상으로 한반도 중부아구(中部亞區)에 속하고 군계(群系) 수준으로 보면 중부 한·온대림에 해당된다. 1. 식생의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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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성종대 전국을 10도(道)로 나누었다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여 5도로 개편하였다. 이때 양주와 광주 소속의 기존 군현과 청주·충주 소속의 군현들을 합하거나 나누어 편성하면서 명칭의 변경이 있었으나, 충숙왕 때는 양광도로 만들었다. 『고려사(高麗史)』권 56, 지(志) 제10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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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서 불리던 경기민요의 하나. 「양산도(陽山道)」는 경기도 지역에서 입창(立唱)으로 불리는 노래로, 진천이 경기도와 인접해 있어서인지 많이 불린다. 지역에 따라 「양산(陽山)」, 「향산(香山)」, 「향산도(香山道)」, 「양산가」라고도 한다. 세마치 장단으로 씩씩하고 경쾌하게 부른다. 진천읍 읍내리에 사는 이철우[남,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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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진천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백제는 일찍이 한성시대에 진천을 자신의 세력권에 넣었으며, 백제의 세력이 쇠퇴하고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방진출의 교두보로서 진천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신라 역시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진천을 장악하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와 고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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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에 있는 신라시대 우물 터. 연보정(蓮寶井)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든 원형 우물로서, 김유신(金庾信)[595~673]이 사용했던 우물이라 전한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은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金舒鉉)이 만노군태수로 부임하여 살던 곳으로, 큰 담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후대에 담안밭이라고도 불렸다. 이외에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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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서수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을 연결하는 고개. 엽둔재(葉屯재)[344m]는 엽둔과 재로 나뉜다. 엽둔은 엽돈의 변화형으로 엽전(葉錢)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도적 떼들이 들끓어 엽전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모두 털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엽둔고개·엽둔재고개·엽둔치·엽둔티·협탄티[脇呑티]·협돈령[脇돈嶺]으로도 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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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 고갯새울마을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를 연결하는 고개. 옥정(玉井)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를 가리킨다. 따라서 옥정현(玉井峴)은 ‘옥정리로 넘어가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이며, 달리 옥정리고개로도 부른다. 옥정은 전국적으로 발견되는 지명이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좋은 우물’로 풀이한다. 특히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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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음력 정월 초에 윷을 가지고 한 해의 운수나 풍흉을 점치는 풍속. 윷점치기는 백곡면 명암리에서 정초[음력 1월초]에 윷놀이를 하여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풍속이다. 한자어로는 사점(柶占)이라고 한다. 윷점은 여러 사람이 편을 갈라 윷을 논 후 승부로 점을 치는 방법과 한 사람이 여러 번 윷을 던져 나온 결과로 점을 치는 방법이 있다. 집단적인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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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행정리 문안산과 진천읍 원덕리 봉화산의 중간을 연결하는 고개. 잣고개는 잣과 고개로 나뉜다. 잣은 대부분 잣나무로 보아, 잣고개는 ‘잣나무가 많은 고개’로 풀이하고, 백현(栢峴)이라는 한자 지명이 대응된다. 가까운 예로,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 백현2리를 들 수 있다. 한편 잣은 성(城)의 뜻도 있다. 잣은 정음 문헌에 처음으로 보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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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금암리와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덕성리 배성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장고개[場고개]는 장(場)과 고개로 나뉜다. 장은 정기적 또는 부정기적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 여러 가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을 말한다. 따라서 장고개는 진천읍 금암리에 서는 ‘장을 정기적으로 보러 다니던 고개’로 풀이된다. 장고개는 배성고개로도 불린다. 지명에서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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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성대리 두멍골마을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를 연결하는 고개. 장고개[場고개]는 장(場)과 고개로 나뉜다. 장은 정기적 또는 부정기적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 여러 가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을 말한다. 따라서 장고개는 ‘정기적으로 장을 보러 다니던 고개’로 풀이된다. 장고개는 개미둑재로도 불리는데, 산이 높아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뒤에 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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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금암리 금성골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덕성리 벌터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장교현(長橋峴)은 장교티·장교다리고개로도 불린다. 1464년(세조 10) 2월 세조가 보은군 속리산(俗離山)으로 행차할 때 진천군 길상사(吉祥祠)에서 충청도 군사 4만여 명을 모아 큰 훈련을 하였는데, 목천 서쪽에 있는 각 고을의 장교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이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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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애니미즘(Animism)·토테미즘(Totemism)·샤머니즘(Shamamism) 등의 원시 신앙 이후 새롭게 등장한 것이 유교·불교·도교·기독교·이슬람교 등의 보편적인 종교였다. 이 종교들은 인간 중심의 원시 신앙보다는 더 발전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교·불교가 고대 사회와 중세 사회를 이끌었고, 근·현대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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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일정한 틀에 쇳물을 부어 기물을 만드는 기술이나 그 장인. 주조는 원하는 형태의 제품을 만들고자 미리 제작한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제품을 만드는 방법으로, 이전의 청동기 제작에서도 사용되었다. 고대부터 쇠를 이용하여 필요한 물품을 만드는 기술과 장인은 국가적인 관심사였다. 또한 한반도에 불교가 정착되면서 사찰이 건립되고 많은 범종이 제작되었는데, 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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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산수리에 있는 백제시대 가마터. 진천 산수리 백제요지는 4세기경의 백제 토기 요지이다. 이곳에서 수집된 많은 토기편들은 원삼국시대 타날문토기(打捺紋土器)[두드림무늬 토기]가 백제 토기로 발전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자연 경사면을 이용할 수 있는 완만한 야산이 발달되어 있는 이 일대에는 우리나라 삼국시대 토기의 모태가 된 원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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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에 있는 고대 철 생산 유적.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에서는 고대의 제철유적지가 발견되었다. 제철은 철광석과 연료를 이용해 철을 분리해 내는 과정이다. 철광석은 잘게 부수어져 목탄과 함께 제철로에 투입되는데, 연료 소모를 줄이기 위해 미리 예열하기도 한다. 진천 석장리 유적은 진천군 덕산읍 옥동리 옥동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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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 진천군은 차령산맥이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달리고 있어 산악이 많고 동북부는 광혜원면과 백곡면의 경계를 흐르는 미호천 지류들이 남류하여 비교적 넓은 진천평야를 이루고 있다. 진천군은 충청북도 3시 10군 중의 하나로서 삼한시대에는 수지(首知) 또는 신지(新知)로, 고구려시대에는 금물노군(今勿奴郡)으로, 신라 관할 이후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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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에 있는 삼국시대 토축 산성. 진천 대모산성은 616년(진평왕 38)에 백제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기록된 모산성(母山城)으로 비정하려는 설이 있으나 대모산성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의 지리지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일제강점기의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상산지(常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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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의 북서부 산지를 이루는 산맥. 차령산맥(車嶺山脈)은 차령과 산맥으로 나뉜다. 차령은 다시 차(車)와 영(嶺)으로 나뉜다. 백제어에 산봉우리를 뜻하는 말로 ‘*술(述)’·‘*수리[述尒]’·‘*수니(首泥)’가 보인다. 그리고 중세 국어에서는 ‘수늙[嶺]’이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살펴보면 이들이 주로 중부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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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철을 이용해 도구를 제작·사용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 철기시대라는 명칭은 인류 선사문화의 발달을 석기-청동기-철기문화의 순서로 정리한 톰센[C. J. Thomsen, 1788~1865]의 삼시대법[Three Age System]에서 연원한다. 그러나 삼시대법은 선사시대에나 적용된 것이므로 문자를 사용하거나 당시의 모습을 알려줄 문헌이 많이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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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이 속해 있던 행정 구역. 청주(淸州)는 919년(태조 2)에 청주로 이름 붙여졌고 983년(성종 2)에 처음으로 12목을 설치했을 때 청주가 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 후 1018년(현종 9) 8목으로 정리되었을 때도 청주목(淸州牧)은 충청권역의 행정 중심지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신라 말 중앙정부의 지배력이 약화된 틈을 타 호족이라 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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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이론. 풍수라는 말은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다는 뜻의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나온 말이다. 바람을 감춘다는 말[藏風]은 생기가 바람을 만나면 부산(浮散)하므로 그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득수(得水)란 지중에 수기(水氣)가 있으면 생기가 있고, 생기가 축적되면 지상의 복을 가져오니 득수가 필요하다는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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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삼국통일 후 설치한 9개 주의 하나. 한산주(漢山州)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新羅本紀)」와 「지리지(地理志)」,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 기록되어 있다. 한산주는 삼국통일 후 신라가 설치한 9개 주의 하나로 오늘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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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와 진천읍 원덕리 원동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한티고개는 한티와 고개로 나뉘고, 한티는 다시 한과 티로 나눌 수 있다. 중세 국어에서 ‘하다’는 ‘많다[多]’나 ‘크다[大]’를 뜻하는데, 지명에서는 관형형 ‘한’의 형태로 고개·들·우물·마을·나루 등에 폭넓게 연결된다. 티는 고개를 뜻한다. 따라서 한티는 ‘큰 고개’로 풀이할 수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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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금한이마을과 오갑리 말머리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해넘어고개는 회내미고개·회너머고개·회너미고개·희내미고개로도 불린다. 부근 산과 골짜기에 전나무가 많아서 회나무고개라 하였는데, 발음이 변하여 회내미고개·회너머고개·회너미고개·희내미고개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위의 여러 이름들은 전나무가 아니라 홰나무[일명 회화나무]와 관련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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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때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흑양군(黑壤郡)이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지리지(地理志)」에 신라의 한주(漢州)에 속한 지역으로 처음 나온다.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을 개칭한 것이며 황양군(黃壤郡)이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