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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망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066
한자 東望-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진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봉우리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만뢰산 동쪽에 있는 봉우리.

[명칭유래]

동망태는 진천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만뢰산(萬賴山)[612m] 동쪽에 있는 봉우리로, 만뢰산은 본래 만노산(萬弩山, 萬奴山)이었는데 만인의 힘을 입었다 하여 일만 ‘만(萬)’자, 힘입을 ‘뢰(賴)’자를 써서 만뢰산으로 개칭하였다 한다.

만뢰산 정상에는 신라시대에 변방을 지키기 위하여 쌓은 만노산성이 있는데,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막는 데 요긴한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동망(東望)은 ‘만노산성 동쪽을 살피는 망루’로 풀이할 수 있다. 터는 일찍부터 지명에 쓰였으니, 고구려 지명에서 제(隄)와 대응되는 토(吐)·‘*토[刀]’가 보인다.

‘칠제현본칠토현(漆隄縣本漆吐縣) 대성군본구도성경내(大城郡本仇刀城境內)’[『삼국사기(三國史記)』34]/‘내제군본고구려( 奈隄郡本高句麗) 내토군(奈吐郡) 제상현본고구려토상현(隄上縣本高句麗吐上縣) 장제군본고구려주부토군(長隄郡本高句麗主夫吐郡) 속(일작동)제현(梀(一作棟)隄縣) 본고구려속토현(本高句麗束吐縣)’[『삼국사기』35]/ ‘내토군일운대제(奈吐郡一云大提)’[『삼국사기』37]

현대 지명에서도 터는 매우 생산적인 후부 요소로, 한자로는 대(垈)가 대응된다. 또한 터 외에 태·테·퇴·때·턱으로도 나타난다. 의미 영역도 터 이름 외에 마을, 들, 골, 산의 이름으로 전용되고 있다. 이상으로 미루어 동망태는 ‘만노산성 동쪽을 살피는 망루가 있던 터’로 풀이된다.

[자연환경]

만뢰산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진천읍,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덕성산(德城山)의 한 맥이 서운산(瑞雲山)을 이루고 다시 엽둔재를 넘어서 남쪽으로 뻗어 이루어졌다.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진천읍 연곡리를 경계로 하여 진천군 하천 분포의 분수령을 이룬다.

이운해(李運海)는 「차봉암운(次鳳岩韻)」에서 만뢰산의 경관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옛 자취 전해 주는 의젓한 칠 리 성이며, 김유신 장군 이후 병란 당시 적군을 섬멸한 용맹 길이길이 빛나리. 비바람 따라 멀리 옛 산성을 찾아드니, 눈앞에 서린 준봉 병정들이 열을 지은 듯, 병란 당시 호성을 섬멸했던 이 고장. 초동들까지도 유공의 용명을 기리고 있네.”

[현황]

만뢰산 정상에는 신라시대 김유신(金庾信)의 아버지 김서현(金舒玄)이 이곳 태수로 있을 때 축조하였다고 전해지는 만노산성이 있다. 신라의 서북 국경 지대를 지키는 요충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병자호란 때에는 유창국(柳昌國)조감(趙瑊)이 의병을 모아 청군에 맞서 수천 명의 피난민을 구했다고 한다.

만노산성 터에서는 음료수 저장고 1개소가 발견되었고, 신라 및 백제계의 경질토기 조각과 통일신라 시기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도자기·기와 조각이 출토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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