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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080
한자 葉屯-
이칭/별칭 엽둔치(葉屯峙)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진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개
높이 344m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서수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을 연결하는 고개.

[명칭유래]

엽둔재(葉屯재)[344m]는 엽둔과 재로 나뉜다. 엽둔은 엽돈의 변화형으로 엽전(葉錢)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도적 떼들이 들끓어 엽전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모두 털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엽둔고개·엽둔재고개·엽둔치·엽둔티·협탄티[脇呑티]·협돈령[脇돈嶺]으로도 불린다. 협탄티는 이곳에 협탄원(脇呑院)이라는 원(院)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여겨진다. 협돈령의 협(脇)은 협탄티의 ‘협’이고, 돈은 엽둔재의 ‘둔’의 변화형으로 보인다. 고구려와 백제의 옛 지명에 ‘영(嶺)’·‘현(峴)’계 지명이 다수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개’는 일찍부터 지명에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자연환경]

엽둔재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을 이루던 곳으로, 지금도 당시의 유지(遺址)가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안성에 사는 홍계남(洪季男)이 의병 수천 명을 모아 왜군과 싸워 승리한 뒤로 이 지역은 왜군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홍계남을 수원부사로 임명하였다. 엽둔재 오른쪽에는 홍계남이 왜군과 싸울 당시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성터가 남아 있다. 간송(澗松) 이인덕(李寅悳)은 엽둔재의 경관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촉도(蜀道) 험준하다는 말 여러 번 배불리 들었는데, 상봉에 오르니 좁은 골짜기 얽히고 어지럽기도 하구나. 겨우 남북으로 조그마한 길이 통하고 있을 뿐, 경기와 충청 양도가 여기를 경계로 했구나. 홍계남 장군이 의병을 일으킨 일 청사에 빛나네. 국토를 구제한 그 고성 멀리 구름 속에 잠겼구나. 눈에 어리는 모든 사연 다감도 하구나. 시 한 수 읊고 또 한 번 얼큰하게 취했구려.”

[현황]

현재는 진천군에서 엽둔재를 넘어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을 지나 경부선 성환역으로 통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엽둔재 중턱에서 나오는 물이 일급수라고 하여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매일 성시를 이루고 있다. 초평면 신통리 용동마을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임꺽정굴이 있다. 임꺽정이 이 굴에 은거하면서 이월면 옥정현(玉井峴)백곡면 엽둔재를 거점으로, 안성 방면으로 약탈을 하기 위해 왕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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