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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024
한자 敎育
영어의미역 education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순규

[정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개설]

삼국시대의 진천 지역은 삼국이 접경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배 영역 속에서 삼국의 교육 제도와 문화적 영향을 받았으리라 보여 진다. 고구려는 각 지방에 사립 학교인 경당을 세워 평민의 미혼 자녀들에게 독서와 궁술을 익히게 하였으므로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이었던 진천 지방에도 경당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은 가능하지만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백제는 문헌에 학교 설립에 관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진천 지방의 교육에 관한 추측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신라는 삼국 통일 이후 유학 대학인 국학을 설립하여 귀족의 자녀를 가르쳤고, 진천이 신라의 만노군(萬弩郡)으로 김유신이 탄생한 지방인 것을 감안하면 국학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될 따름이다.

고려시대의 관학으로는 개성에 설치된 국자감(國子監), 동서학당(東西學堂)과 오부학당(五部學堂)이 있었고, 지방에는 향교가 있었으며, 사학으로는 12공도(公徒)와 서당이 있었는데 문헌상 기록은 없으나 사립의 서당이 초등 교육 기관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 지기 때문에 진천 지방도 이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진천 지방의 교육에 관한 문헌상 기록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나타난다. 관학으로는 조선 태종 때에 진천향교가 설립되었고, 사학으로는 선조 때에 이월면에 설립된 백원서원(百源書院)경종 때에 초평면에 설립된 지산서원(芝山書院) 등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으나 교육에 관한 사료는 1895년 고종의 교육입국조서(敎育立國調書)에 영향을 받아 선각자들이 사재로 설립한 학교가 진천 지방에도 설립되면서부터 남아있다.

[변천]

1. 근대

1895년 2월 고종은 교육입국조서를 내려 신교육의 중요성과 교육의 3대 강령으로서 덕육(德育), 체육(體育), 지육(智育)을 강조하여 국가 중흥을 꾀하였으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1907년 정미7조약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며 1910년 한일병합에 이르게 되자 이 시기를 전후하여 진천 지방에도 선각자들에 의해 근대적인 학교가 설립되게 되었다.

사립 상산학교(常山學校)는 1905년 10월 28일 읍내리에 거주하는 이상직(李相稙)이 자기 집 객실을 개조하여 설립한 학교로 학생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다가 학생 수가 늘어 교실이 협소해지자 진천향교 명륜당 등지로 전전하였다. 1909년 당시 진천군수 이택응이 진천향교의 연수입인 조 40여 석과 부지를 제공하자 이상직은 교사를 신축하고 교명을 문명학교(文明學校)로 개칭하여 학부(學部)에 인가를 받아 자신이 교장이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니 비로소 사립 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10년 한일병합으로 사립 학교가 탄압 및 폐지되게 됨에 따라 1911년 6월 3일 공립 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9월 5일 문명학교를 폐지하고 10월 2일 진천공립보통학교로 설립하였으니 이 학교가 상산초등학교의 전신인 것이다.

사립 보명학교(普明學校)는 1907년 6월 대한제국 군무학교(軍務學校) 1기 졸업생으로 정위[현재의 대위]로 군 복무를 하다가 1908년 8월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고향으로 내려온 신팔균이월면 노원리 노곡평산신씨 종중 재산을 투자하여 설립한 학교로 신팔균이 교장이 되어 3년간 민족정신과 배일사상을 고취시키고 신학문을 가르쳤다.

그러나 한일병합이 체결되자 신팔균은 독립 운동을 위해 보명학교를 동생인 가균과 필균에 맡기고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신필균은 보명학교를 자택으로 이전하고 일제강점기의 학제에 따라 사립 보명학교로 개칭하여 교육하였지만, 3·1운동 이후 일본의 문화 정책에 따라 1920년 1월 6일 현 이월초등학교의 전신인 장양공립보통학교로 전환되었다.

초평면 용정리 사설 강습소는 1912년 양촌(陽村)에 거주하던 이종익이 이상직이 설립하여 운영하던 문명학교의 영향을 받아 우국지심으로 사재를 투자하여 개설하였다. 일제강점기였던 관계로 사설 강습소로 인가를 받아 교육을 하다가 3·1운동 이후 일본의 문화 정책에 따라 1923년 4월 1일 공립 보통학교로 인가를 받아 지산서원의 옛 터로 이전하였으니 지금의 초평초등학교의 전신이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제는 무자비한 탄압과 한국 민족의 민족정기 및 자주 독립 사상을 말살하기 위하여 사립 학교를 폐교시키고 재산을 강탈하여 공립 학교로 귀속케 하였으며, 동년 11월에는 한국인이 저작한 교과서는 몰수하고 총독부에서 편찬한 교과서를 사용하게 하는 한편, 공립 학교 교장에는 일본인을 임명하고 일본어로 교육을 실시하며 우리말과 우리역사는 가르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1911년 3·1운동으로 일제는 문화 정책을 표방하며 유화 정책을 펼치면서 1922년 2월 4일 칙령 제19호로 전문 26조와 부칙으로 된 제2차 조선교육령을 공포하였다. 이 조치에 의해 교육 연한이 늘어나고 학교급별 수업 연한이 늘어났으며 한국인과 일본인의 공학이 허용되고 조선어가 필수 과목으로 부활하는 등 외형이나 제도상으로는 일본의 교육 제도와 차별이 없는 것같이 보이기는 하였으나 일본어의 강력한 학습과 역사의 왜곡 날조 등을 통해 한국 문화의 전통과 사상을 말살하여 철저한 식민지 정책은 여전히 실시되었다.

이 시기의 진천 지역의 학교 현황은 6년제 보통학교 4개교와 4년제 보통학교 2개교 외에 일본인 교육 기관인 진천공립심상학교가 설립되었으며, 25개의 서당에 199명의 학생들이 수학했다.

6년제 보통학교로는 사립 상산학교가 전신인 진천공립보통학교[1911년 10월 2일 개교, 현 상산초등학교], 사립 보명학교가 전신인 장양공립보통학교[1920년 4월 1일 개교, 현 이월초등학교], 옥동공립보통학교[1922년 12월 22일 개교], 초평 사설강습소가 전신인 초평공립보통학교[1923년 4월 1일 개교, 현 초평초등학교]가 있었고, 4년제 보통학교로는 백곡공립보통학교[1929년 4월 16일 개교], 만승공립보통학교[1929년 4월 1일 개교]가 있었으며, 이후 문백공립보통학교[1935년 9월 1일 개교]가 개교하였다.

1925년 이후 보통학교와 거리가 먼 벽지에 2년제의 간이 학교(簡易學校)를 세웠는데 용산간이학교[1933년, 구정초등학교 전신], 구곡간이학교[1934년, 문상초등학교 전신], 지암간이학교[1934년, 성암초등학교 전신], 삼룡간이학교[1936년, 학성초등학교 전신] 등이 있다. 1929년에는 진천유치원이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의 말기인 1943년 삼수국민학교가 인가되었고, 1944년 지암간이학교가 성암국민학교로, 삼룡간이학교가 학성국민학교로, 용산간이학교가 구정국민학교로, 구곡간이학교가 문상국민학교로 승격하여 해방이 될 때까지 12개의 초등학교가 있었다. 1944년 3월 31일 3년제의 진천공립농업전수학교가 농업과 각 학년 1학급으로 인가를 받아 1945년 5월 20일 진천공립농업학교로 개칭하여 개교하였다.

2. 현대

광복 이후 1949년 9월 1일 한천국민학교가 개교하였고, 이월국민학교 신월분교[1957년 1월 15일 설치]가 1959년 4월 1일 상신국민학교로 승격·개교하였으며, 만승초등학교 구암분교[1958년 4월 1일 설치]가 1962년 3월 2일 금구초등학교로 승격·개교하였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분교장에서 국민학교로 승격하였다가 인구가 감소하여 다시 분교장으로 격하되었다가 폐교된 국민학교가 있었다. 신덕국민학교는 1963년 7월 29일 삼수국민학교 신덕분교장으로 인가를 받아 1966년 9월 9일 신덕국민학교로 독립하였으나 1994년 3월 1일 삼수국민학교로 다시 통합되었다. 두촌국민학교는 1968년 9월 1일 옥동국민학교 두촌분교장으로 인가 받아 1971년 3월 1일 두촌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가 1989년 9월 1일 한천국민학교 두촌분교장으로 격하된 후 1999년 9월 1일 폐지되었다.

오상국민학교는 1966년 10월 31일 구정국민학교 양화분교장으로 인가 받아 1968년 8월 30일 오상국민학교로 인가 받았으나 1996년 3월 1일 다시 구정초등학교 오상분교장으로 격하되었다가 2002년 3월 1일 폐지되었다. 또한 성대국민학교는 1953년 8월 21일, 백곡국민학교는 1953년 8월 21일, 백곡국민학교 성대분교장으로 인가를 받아 1957년 3월 성대국민학교로 개교하였으나 1994년 3월 1일 백곡국민학교 성대분교장으로 격하된 후 1999년 3월 1일 폐교되었다.

더불어 인구의 증감으로 인해 설치 및 폐지된 분교장이 있었는데, 성암국민학교 연곡분교장이 1957년 4월 1일 설립되었다가 1991년 3월 1일 폐지되었고, 문백국민학교 은탄분교장은 1958년 4월 9일 개교하였으나 1993년 3월 1일 폐지되었으며, 백곡국민학교 명암분교장은 1965년 4월 12일 설립되었다가 1991년 3월 1일 폐지되었다. 일제의 동화 정책으로 황국신민(皇國臣民)의 약자로 초등학교의 명칭이 국민학교로 칭하던 것을 1996년 3월 1일 일제히 초등학교로 개칭하게 되었다.

중학교의 경우, 진천중학교가 1951년 10월 2일 개교하여 남녀공학으로 운영하던 중 1965년 3월 6일 여자 중학생들은 진천중학교로부터 분리되어 진천농업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여고생들과 합쳐 1965년 3월 9일 진천여자중고등학교가 설립되면서 편입되었다. 그 외 광혜원중학교는 1953년 4월 22일 상산중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동년 5월 7일 개교한 후 1956년 5월 9일 광혜원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덕산중학교는 1955년 9월 25일에, 백곡중학교는 1971년 3월 8일에, 이월중학교는 1972년 3월 10일에 각각 개교하였다.

3. 교육 제도 및 행정

미군정하에서 조직된 조선교육심의회는 교육 이념을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하고, 학제를 6·3·3·4제로 확정하였으며 1년을 2학기로 하여 1학기는 9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2학기는 3월부터 8월까지 정하여 1943년 9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초대 문교부 장관에 안호상이 취임하였으며 1948년 12월 중학교 이상 각 급 학교에 학도호국단이 설치되었다.

1949년 12월 31일 교육법이 제정 공포되고 다음해에 교육법 시행령이 제정되어 교육 자치제의 근거가 마련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시행을 하지 못하다가 1952년 5월 24일 각 면 의회에서 1명씩 선출된 교육 위원과 당연직인 의장[군수]으로 진천군 교육위원회가 구성되고, 진천교육구청 초대 교육감에 조영원이 취임함으로써 내무부에 예속되어 있던 교육 행정이 문교부로 이관되어 명실상부한 교육 자치 시대를 열게 되었다.

이 당시의 교육 자치제는 시·군 단위였으나 1963년 11월 1일 교육법의 개정으로 교육 자치제는 시·도 단위로 확대되어 1964년 1월 1일 5명으로 조직된 충청북도교육위원회가 출범하고 진천군 교육청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1991년 3월 26일 법률 제4347호에 의거 교육위원회는 심의 의결 기관으로 하고 충청북도 교육청은 집행 기관으로 하도록 하였으며 하급 행정 기관인 충청북도 진천교육청으로 개칭하게 되었다.

[교육기관]

1. 유치원

진천군에는 16개의 공립 유치원과 1개의 사립 유치원이 있으며 원아 수는 525명이고 교원 수는 38명이다. 공립 유치원 모두 초등학교 또는 분교장 병설 유치원으로 26학급 426명이고, 사립 유치원은 4학급 99명이다. 병설 유치원이 설치된 초등학교는 상산초등학교, 삼수초등학교, 성암초등학교, 이월초등학교, 학성초등학교, 상신초등학교, 금구초등학교, 옥동초등학교, 한천초등학교, 초평초등학교, 구정초등학교, 문백초등학교, 문상초등학교, 백곡초등학교, 만승초등학교삼수초등학교 매산분교장 등이 있다. 사립 유치원으로는 문화유치원이 있으며 단설 유치원은 없다.

2. 초등학교

초등학교는 모두 공립이며 16개 학교, 201개 학급에 4,597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교원 수는 291명이다. 이 중 1개교는 분교장으로 진천삼수초등학교 매산분교장이고, 나머지 15개 초등학교는 상산초등학교, 삼수초등학교, 성암초등학교, 이월초등학교, 학성초등학교, 상신초등학교, 금구초등학교, 옥동초등학교, 한천초등학교, 초평초등학교, 구정초등학교, 문백초등학교, 문상초등학교, 백곡초등학교, 만승초등학교이다.

3. 중학교

중학교는 6개교가 있으며 79개 학급에 2,324명이 재학하고 있으며, 교원 수는 144명이다. 진천중학교, 진천여자중학교, 덕산중학교, 광혜원중학교, 이월중학교, 백곡중학교 6개교 모두 공립이다. 이중 진천여자중학교는 1965년 3월 9일 진천중학교에서 분리되어 진천여자중고등학교로 개교하였다가 1983년 9월 1일 진천여자고등학교와 분리되었다.

4. 고등학교

고등학교는 진천고등학교, 광혜원고등학교, 진천생명과학고등학교, 진천상업고등학교 등 4개교가 있고, 61개 학급에 1,770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으며 교원 수는 122명이다. 1977년 개교한 진천고등학교는 일반계 고등학교로 농산촌 우수고등학교 및 기숙형 고등학교로 지정되어 있고, 1956년 개교한 광혜원고등학교는 일반계와 전문계 통합 고등학교이며, 진천상업고등학교는 상업 계열의 전문계 고등학교이며, 진천생명과학고등학교는 농업 계열의 전문계 고등학교이다.

진천상업고등학교는 1965년 3월 9일 진천여자중고등학교로 개교하여 1983년 9월 1일 진천여자중학교와 분리되었다가 1991년 3월 1일 전문계인 진천상업고등학교로 변경되었다. 진천생명과학고등학교는 1944년 3월 31일 진천농업전수학교로 설립 인가되어 1945년 5월 20일 진천공립농업학교 개교하였다가 1951년 8월 31일 진천농업고등학교로 개칭하였으며, 급속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1993년 3월 1일 진천농공고등학교로 변경하였고, 2009년 3월 1일에는 진천생명과학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함은 물론 학과 설치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5. 기타 교육

진천군에는 대학교가 없으나 우석대학교가 캠퍼스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 특수교육의 경우 일반 학교에 특수학급을 편성하여 운영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7개 초등학교에 8학급 48명, 4개 중학교에 4학급 22명, 2개 고등학교에 3학급 26명이 각각 재학하고 있다.

평생교육은 진천도서관을 중심으로 자치 단체와 연계하여 한글 교실 등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교육과학기술부 공모 지역과 함께하는 학교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여 2009년에는 한천초등학교, 초평초등학교, 만승초등학교, 백곡초등학교진천중학교 등이 충청북도 진천교육청의 주도 하에 학생, 학부모 및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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