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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324
한자 漢山州
이칭/별칭 한주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김영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557년(신라 진흥왕 18)연표보기
시행연도/일시 557년(진흥왕 18)
폐지연도/일시 568년(진흥왕 29)|604년(진평왕 26) 재설치|757년(경덕왕 16) 한주로 개칭연표보기연표보기연표보기

[정의]

신라가 삼국통일 후 설치한 9개 주의 하나.

[관련기록]

한산주(漢山州)라는 지명은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新羅本紀)」와 「지리지(地理志)」, 『고려사(高麗史)』「지리지(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

한산주는 삼국통일 후 신라가 설치한 9개 주의 하나로 오늘날의 서울특별시 강동구 송파구 일대 및 경기도 하남시 지역으로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한 이후인 557년(진흥왕 18)에 설치한 지방 행정구역이다. 충청북도 진천지역에 설치한 흑양군도 관할하였다. 삼국통일 전쟁과 고구려와의 대결 과정에서 열세였던 시기에는 주가 일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604년(진평왕 26)에 다시 주가 설치되었다. 삼국통일 후에는 9주의 하나로 고구려의 고토를 지배했는데, 황해도 남부와 강원도 일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대부분 및 충청남도·충청북도의 북부 지역 일부를 관할하는 광역의 행정구역이 되었다. 충청북도 진천 지역은 6세기 중엽 이후 고구려로부터 신라가 영유권을 확보한 이후 신라의 북진 기지가 되었는데, 삼국통일 이후에는 한산주의 최남단 지역으로서 백제의 고토에 설치한 웅천주와 경계를 이루었다.

[변천]

한산주는 본래 백제의 건국지이자 고구려의 한산군 지역이었다. 신라가 553년(진흥왕 14) 백제와 동맹하여 이 지역을 점령한 뒤 신주(新州)를 설치하였다. 557년(진흥왕 18) 신주를 폐지하고 한산주를 설치하였다. 568년(진흥왕 29)에는 주치를 경기도 광주 지역으로 옮기면서 한산주를 폐지하고 남천주(南川州)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604년(진평왕 26) 다시 한산주를 부활시켰다. 한산주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신라 9주의 하나로 황해도·경기도·충청남도·충청북도의 일부를 관할하는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757년(경덕왕 16) 한주(漢州)로 개칭하였으나 신라 말까지 한산주란 명칭도 함께 사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오늘날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은 삼국통일 이후 한산주 관할 지역으로 편입되었다. 진천 지역은 원래 신라에 편입되기 직전에는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이었고, 한산주가 설치될 무렵에는 만노군(萬弩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삼국통일 이후에는 흑양군(黑壤郡)으로 개칭되어 한산주 소속의 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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