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C02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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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 1구 하덕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호 |
풍년은 곡식이 잘 자라고 잘 여물어 평년보다 수확이 많은 해로 쌀을 많이 수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농촌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내린 선물과도 같다. 그런데 요즘의 우리 농촌은 풍년이라고 해도 예전처럼 풍악을 울리며 좋아하지 않는다. 쌀값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더 내려가기 때문이다.
[농사의 어려움]
삼덕리 하덕마을 이장 조래윤 씨는 논농사를 70마지기 정도 짓는다. 요즘은 농촌에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기계의 힘을 빌려서 하는데, 이 기계 값이 만만치 않다.
농촌에서 추수할 때 제일 필요한 기계가 벼를 베는 콤바인이다. 이 기계 한 대가 9,800만 원이다. 이앙기는 모심는 기계인데 비싼 것은 1,700만 원이고, 트랙터는 중형이 2,000만 원, 대형이 3,000만 원이다.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요즘의 농촌에서는 이런 기계들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이렇게 비싼 기계 값을 충당하기도 바쁜데 쌀값은 풍년이라고 작년보다 20% 하락했다며 조래윤 씨는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친다.
요즘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대부분 60세에서 70~80세 되는 노인들이다. 당연히 힘든 일은 기계한테 맡겨야 그나마 농사를 지을 수 있으나, 기계 임대료만 해도 하루에 20만 원이다. 이런 실정이므로, 대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는 집은 5백만 원에서 6백만 원, 7백만 원 되는 대학 등록금 한 번 낼 때마다 기둥뿌리가 나갈 수밖에 없다. 아니, 대학은커녕 중고등학교 다니는 학생 하나 가르치기도 어렵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1년에 목돈이 몇 번밖에 나오지 않은 농촌의 가정마다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전기료 등 한 달에 내야 할 공과금이 만만치 않다. 요즘은 또 집집마다 전화에 휴대전화가 한 사람당 한 대씩 있으니, 이런 것 저런 것 다 내면 하루하루 밥만 먹고사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까지 올 수도 있다고 걱정들을 하는 것이다.
조래윤 이장에게 혼자서 농사를 다 짓느냐고 물어 봤다.
“기계가 있으니까 혼자 짓기는 짓죠. 짓기는 짓는데 혼자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돈을 주고 손을 빌리는 거죠. 예를 들어 못자리할 때라든지 뭐 그때만 못하는 거지요. 또 만약에 약을 친다든지 할 때는 혼자 못하니까 위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전부 다해요. 탈곡을 할 때도 위탁을 하는데, 그 사람들이 운반 차량까지 가지고 오니까 손을 빌릴 수밖에 없죠. 못자리하고 모내기할 때만 사람이 필요한 실정입니다. 모내기는 급하면 두 내우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힘들죠. 그렇게 사람 손으로 하면 갖다 놓고 또 심어야 하니까요.”
[시위를 벌이기도 했어]
조래윤 씨에게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물었다. 1년간 힘들게 농사를 지었는데 쌀값이 폭락하면 굉장히 화도 나고 속상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진천 지역 농민들이 진천군청 정문 앞에 벼 40여 톤을 쌓아 놓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고 전해 주었다. 삼덕리 마을 사람들은 시위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농민들이 화가 난 것은 풍년이 들었는데도 농업협동조합에서 벼를 매입하는 가격이 크게 폭락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쌀 소비가 감소하고 수입쌀을 개방하여 쌀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농민들 입장에선 정부가 이런 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하고 현실적으로 쌀값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까 벼 이삭을 도로에 뿌리고 논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현재 농민들은 정부와 농업협동조합에서 농가의 농업 경쟁력 제고와 소득 보전을 위해 벼 매입을 위한 자금을 우선 지원하고, 벼 재배 농가의 경영안정자금으로 140억 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래도 농사밖에 없어]
우리가 조래윤 씨에게, 이렇게 힘든데 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짓고 있는 이유를 물었더니, “죽으나 사나 농촌에서 할 것이 농사밖에 없으니까, 한 10년은 더 해야죠.” 하고 대답한다.
“이렇게 힘드신데 자녀분들이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지네들이 한다고 하면 하는데 아마 농사의 농자도 모를 텐데요. 그리고 힘들어서 못 시키죠.”
우리의 질문에 답을 하는 조래윤 씨의 말 속에는 힘든 일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조래윤 씨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렇게 어려운 과정에서도 풍년이 들어서 쌀이 많이 수확되면 한 해 농사를 잘 지었다는 생각에 매우 뿌듯하고 기분이 좋단다. 아무리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있는 아저씨는 몇 십 년 동안 해온 일이고, 모를 심고 탈곡할 때까지의 과정이 보람이 있어 앞으로 10년은 더 할 예정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