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C02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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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삼덕리 3구 상덕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호 |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
삼덕리 상덕마을은 옛날부터 조상 대대로 흉년을 모르고 풍년만을 일구며 의식 걱정을 하지 않고 넉넉한 삶을 이루어 온 곳이다. 또한 언제나, 누구에게나 인심이 후덕하여 마을을 찾는 길손에게는 조반석식을 넉넉히 대접하고, 잠자리도 따스하고 편안하게 대접해서 인심 좋은 마을, 살기 좋은 마을로 널리 소문이 났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마을 앞을 지나는 길손이나 마을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나도 물 좋고 기름진 넓은 들이 있는 인심 좋은 덕문이서 살았으면 여한이 없겠네.”라는 말을 진심으로 했다고 한다. 또한 근동에서 딸을 키우는 사람들은 “덕문이로 시집보내 의식 걱정 없이 잘살았으면 좋겠네.”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먹고사는 데 불편함이 없는 마을답게, 상덕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서당이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누구라도 글을 배울 수 있었다. 마을 아이들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 아이들까지도 상덕마을 서당을 찾아서 글을 배우고 익혀서, 글 읽는 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듯 언제나 덕을 쌓고 베풀며, 쉬지 않고 글을 배우고 익히면서 사는 부지런하고 인심이 후덕하면 살기 좋은 평화로운 마을이라 하여 ‘덕문이’라고 한다는 말도 전한다.
[후손이 잘되는 것도 마을 자랑이야]
이곳 상덕마을로 경주이씨가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이후다. 원래 경주이씨들은 약 5백여 년 전에 일어난 갑자사화를 피해 제천군 송학으로 들어가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어렵게 살다가, 임진왜란이 끝난 얼마 후 이곳 덕문이 넓은 들에 터를 잡고 벼농사를 주업으로 살아왔다고 한다.
예부터 후한 인심과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삼덕리에서는 그러한 기운을 이어받아서인지 다양한 분야에서 마을 후손들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후손들 가운데는 두 명의 변호사와 한 명의 의사, 여러 명의 공무원을 배출하여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면서 마을을 빛내고 있다. 비록 마을을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마을의 대소사나 명절 때는 많은 젊은이들이 마을을 찾아 각종 효행 활동과 마을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덕마을 토박이 이상일 할아버지는, 요즘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보면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하면서, 다행히 상덕마을 젊은이들이 성실하고 건장하게 성장해 준 것에 대한 대견함을 표현하였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