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B030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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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계영 |
[축산업을 하다가 수박 농사를 시작한겨]
덕산수박작목회 총무 김기주 씨를 만나러 간 곳에는 수박 하우스 동이 굉장히 많았다. 지금 하우스는 한 동이 옛날 어른들이 말하는 그 한 마지기[약 661.16㎡]나 다름이 없다. 김기주 씨는 옛날 말로 하면 30마지기[약 19,834.80㎡] 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 동에 수박이 몇 개 정도 나오는지 물었더니 대략 430개 정도가 생산된다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김기주 씨 딸이 어딜 나갔다 왔는지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길을 따라 하우스 저편으로 간다. “우리 작은딸이 방학이라서 운전면허 딴다고 학원을 다녀요. 거기 다녀오는 모양입니다.”
김기주 씨는 여기에서 축산을 조금 했었는데 축산 시설 때문에 가축을 지키느냐고 뒤에 조그맣게 오두막처럼 지어 놓은 집이 있다고 한다.
그럼 지금도 축산업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소를 몇 마리 키우다 지금은 다 팔고 없단다. 원래 덕산읍은 한우가 유명한 곳으로, 용몽리에서도 한 다섯 농가가 키웠다. 지금도 키우는 집이 있지만, 김기주 씨는 아이들 공부시키느라 다 팔고, 수박 농사로 뛰어든 게 벌써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덕산꿀수박 이름으로 팔아]
10년 전 김기주 씨가 수박을 팔러 서울로 가지고 올라가서, 제일 좋은 것을 1통에 만 원에서 만 오천 원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도 똑같이 만 원에서 만 오천 원을 받는다. 10년 전 시세하고 지금 시세하고 똑같은 것이다. 비닐 등의 자재나 비료, 농약 등은 약 세 배나 오르고, 그 외 모든 물가가 굉장히 많이 올랐는데도 수박 가격은 그대로인 것이다.
김기주 씨가 학교에 다닐 적에는 논 한 마지기만 가지고 있어도 아이들이 공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고 했다. 이 한 동에서 나오는 수박 가지고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힘들다는 얘기다.
덕산꿀수박은 모두 서울로 올라간다. 덕산에서 서울 가락시장까지 가서 수박을 팔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덕산이란 상표를 가지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붙여서 서울 가락시장이나 농업협동조합 청과 코너에 들어가서 발을 넓히고 자리를 굳혔으니, 계속 그런 식으로 할 수밖에 없고 또 물량이 늘어나니 계속 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한다.
매일 이 많은 하우스를 관리하느라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김기주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이제 종식을 했다 하면 일상생활에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일기를 쓰는 것처럼, 약을 줬으면 무슨 약을 얼마만큼의 양을 줬는지 해서 관리를 합니다. 친환경 저농약 농사를 지으면 수박에 쓸 수 없는 약이 있고 수박에 쓸 수 있는 약이 있는데, 그 양을 어느 정도 써야 되고 하는지를 적어 나가면서 하는 겁니다.”
김기주 씨뿐만 아니라 덕산수박작목회 회원들은 이렇게 철저할 정도로 농사 일지를 쓰면서 체계적으로 관리를 해서 덕산꿀수박의 명성을 지켜 나가고 있었다. 덕산꿀수박의 명성이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