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B01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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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시장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계영 |
덕산읍의 중심부이기도 한 용몽리 시장마을은 예전에 구말장이라고도 불렸던 덕산장이 크게 번성했던 곳이다. 진천장과 규모를 나란히 했었다는 덕산장의 중심부인 시장마을은, 다시 한 번 화려했던 옛 시절의 영광을 재현할 날을 꿈꾸고 있다.
[구말이 뭐냐고?]
구말이 무엇일까? 구말장으로도 불렸다는 이 마을은 바로 덕산읍 용몽리에 있는 시장마을을 말한다. 진천문화원에서 편찬한 『내고장 전통 가꾸기』에 의하면, 원래 시장마을은 한천교 건너 한천리에 있었는데, 1933년에 큰 홍수가 나면서 시장마을이 없어져 버렸다. 그 후 용몽리 몽촌으로 시장마을이 이전한 뒤 옛 마을 이름을 따서 구말이라 하고 시장 이름도 구말장터라고 부른다고 한다.
[기씨 부인 이야기도 있지]
그런데 시장1리 이장이기도 한 조성계 씨는 구말장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래를 들려주었다.
“60년 내지 70년 전에 장마가 졌어요. 한천교 건너편이 옛날에는 구말장터인데 사실 구말이라는 얘기는 어서 나왔냐 하면 말이죠. 지금은 여기가 구말장터인데 기씨 부인인가 누가 중국 황후로 되어 중국으로 가다가, 옛날 그 다리 건너 구말 터에다가 말을 아홉 마리 매어놓고 쉬었다는 겁니다.”
중국 황후가 된 기씨가 중국으로 가는 길에 한천교 건너편에 말을 아홉 마리 매어 놓고 쉬었다고 해서, 그 후로 그 곳을 ‘아홉 마리 말’을 뜻하는 ‘구말’을 붙여 구말장터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큰 물난리가 나는 바람에 그쪽에 살던 사람들이 다리 건너 지금의 시장마을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건너온 사람들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양조장도 그 홍수가 났을 때 온 것으로 알고 있고, 여기가 형성된 건 육칠십 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조성계 씨는 자신이 상가번영회장을 맡고 있지만 정확한 연대 등을 기록해 놓은 자료가 없어서 더 이상은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원나라 순제(順帝)의 황후인 ‘기황후’는 원래 고려 여인이다. 따라서 기씨 부인이 한천교 건너편에 아홉 마리 말을 묶었다고 해서 구말이 되었다고 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 얘기지만, 역사책에 나와 있는 부분과 들어맞는 구석도 있어서 한편으론 흥미로웠다. 확실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76년 전 한천교 건너편에 형성되어 있었던 시장이 홍수로 인해 지금 시장마을 자리로 옮겨 왔다는 것이다. 현재 지도상에서도 한천교 바로 건너편을 ‘구장터’라고 이름 한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홉 마리 말이 아닐걸요? 결혼도 여기서 했는걸요.]
그런데 세왕주조[옛 덕산양조장] 사장인 이규행 씨는 구말과 관련하여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구말이 이곳으로 옮겨 오기 전에는 저쪽 한천교 건너편에 장이 있었어요. 그런데 을축 대홍수인가 1920년대쯤에 홍수가 나서 이쪽으로 옮겨 왔죠. 그리고 아홉 마리가 아니라 아홉 조의 말일 거예요. 『동국세시기』인가 어디에 그 기록이 있다고 들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나네요. 한 조에 4마리의 말이 있는데 총 아홉 조, 그러니까 36마리의 말을 끌고 와서 황후가 될 사람이 그 장터에서 결혼했다고 알고 있어요.”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