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A030302 |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정아 |
우리가 임영은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 임상직 할아버지 댁 앞에서였다. 이제는 진천군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 잡은 농다리는 1년 내내 많은 방송국에서 촬영하고 싶어 하는 장소이기도 한데, 그날도 역시 한 방송국에서 농다리를 건너는 노인은 장수를 한다는 주제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임영은 씨는 이 촬영을 위해 임상직 할아버지를 모시러 온 것이었다.
임상직 할아버지에게 농다리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 보는 우리의 모습을 본 임영은 씨가, 농다리에 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물어 보라며 특유의 인심 좋은 웃음과 함께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때부터 인연이 되어 임영은 씨는 우리가 구곡리 답사 중 궁금한 점이나 힘든 점이 있을 때 도움을 주는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주었다.
[돌다리에 생명을 불어 넣는 농다리 지킴이가 되기까지]
구곡리 구산동마을 사람들은 임영은 씨를 ‘농다리 지킴이'라고 부른다. 농다리와 관련한 일이라면 언제나 열정적인 모습이기에 붙여진 훈장과도 같은 이름이다.
그렇다면 임영은 씨에게 농다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천군 구곡리 구산동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농다리는 부모, 형들과 함께 농사를 지러 다녔던 곳이다. 또한 친구들과 물놀이를 했던 추억의 장소이자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음식을 먹으며 화합을 쌓았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추억이 서린 농다리를 뒤로 하고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임영은 씨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임영은 씨는 동료, 친구들과 함께 단합 대회를 갈 때면 고향, 특히 농다리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어느 곳도 농다리처럼 정겹고 아름다운 곳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 봐도 농다리처럼 정겹고 아름다운 곳이 없었어요, 물도 깨끗하고 주변 경치도 아름답고, 어떤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그런 곳 말이에요.”
임영은 씨는 그럴 때마다 훌륭한 농다리를 널리 알려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작은 꿈을 꾸었고, 오랜 소원이기도 그 꿈의 실현을 위해 가족들을 설득하여 1999년 고향 진천으로 귀향하게 된다.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그 당시에 IMF가 터졌는데, 먹고 살기 힘드니까 고향에 내려오지 않았느냐 하는 눈총도 많이 받고∙∙∙∙∙∙∙.”
그러나 귀향은 임영은 씨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고 한다.
“주변에선 저를 정신병자라고 했어요, 내려왔을 때 주변에 밭, 논, 산, 다리만 달랑 있었어요. 표지판이 있었는데 표지판도 유영 수염금지 빨간 글씨로 그것만 달랑 있었어요.”
그러나 임영은 씨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농다리가 마을을 대표하는 것을 넘어 진천군, 충청북도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 보배가 될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임영은 씨는 본격적으로 농다리를 알리고자 애썼다. 농다리청년회를 만들어 농다리 주변을 정화하는 활동을 하고, 농다리 역사 찾기, 농다리의 사계절 사진으로 홍보하기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다. 또한 구산동마을에서 살다가 떠난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다시 끌어 모으고 싶은 마음에 농다리 축제를 계획하기 시작했다고 말해 주었다. 말 그대로 임영은 씨는 그 무렵 ‘자나 깨나 농다리’ 생각뿐이었다.
임영은 씨는 농다리 카페(http://cafe.daum.net/nongdari)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인터넷의 발달에 발맞추어 농다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빠르게 알리는 방법의 하나로 2004년에 온라인 카페를 개설하게 되었고, 농다리 카페는 전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농다리를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지금은 사이버상에서 자신의 홈페이지와 농다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임영은 씨지만 인터넷 활용 솜씨가 부족하던 시절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제가 인터넷 활용을 잘 못해서 농다리 지킴이를 오프라인으로 서류로 받았어요, 내가 아는 단골집 술집도 갖다 놓고 관공소도 갖다 놓고, 양식이 있었어요.”
농다리 카페는 현재 회원수가 470명이다. 그 중에는 유령 회원도 많고 사업 홍보를 위해 카페에 가입했다가 탈퇴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사람들도 한 번은 농다리를 알고 나가는 것이 아니냐며 농다리 카페 운영에 보람을 느낀다고 하였다. 또한 회원이 아니더라도 다른 블로그나 웹 사이트에서도 수백 명씩 농다리 카페에 다녀가고 있다는 말도 해 주었다.
[가족 모두가 농다리 지킴이]
“축제 시기에 임박하면 우리 가족은 축제 준비에 돌입합니다. 학교에 갔다 오면 팸플릿 갖다 놓고 봉투에 풀 붙이고, 아들들이 학교 갔다 오면 아빠가 원하는 계획 프로그램 다 만들어 주지요.”
임영은 씨가 농다리 지킴이가 되기까지는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도 한 몫을 하였다.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던 아내는 물론이고 두 아들까지 모두 농다리 지킴이가 되어 임영은 씨의 활동을 돕는다. 농다리 지킴이 가족은 이제 내년에 열릴 농다리 축제 준비에 돌입할 예정이라며 임영은 씨는 활짝 웃어 보였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