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1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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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艮坐蟹伏形山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 |
집필자 | 한석수 |
성격 | 지명 설화|풍수담|명당 파손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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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고성이씨 선대 대감|고성이씨 후손 |
관련지명 |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 새터마을|진천읍 송두리 내동마을 |
모티프 유형 | 석물 설치로 명당 파손|금기를 어겨 망한 고성이씨|실전된 선대 묘를 다시 찾은 후손 |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에서 고성이씨의 선대 묘소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간좌 해복형 산소 이야기」는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 새터마을에 송두리 내동마을에 살던 고성이씨의 선대 묘가 간방(艮方)[정동과 정북 사이의 한가운데]을 등지고 앉은 자리가 게가 엎드려 있는 형국[蟹伏形局]이라는 풍수설화이다.
묏자리의 지형이 해복형국인 고성이씨의 선대 묘소에 상석 등 석물을 하면 후손이 좋지 않다는 금기(禁忌)가 있었다. 그런데 후손들이 집안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이 금기를 어기고 석물을 한 뒤 고성이씨 집안이 망하였다. 그러다가 근래에 도굴꾼들에 의해 석물이 도난당한 뒤 후손이 와서 실전된 산소를 관리한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상황]
2004년 진천상산고적회에서 간행한 『진천의 구비문학』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진천군 진천읍 성석리 새터마을에서 송두리 내동 텃골로 넘어가는 산 중턱에 게가 엎드려 있는 형국의 명당이 있다. 이 산소는 진천읍 송두리 내동에 살던 고성이씨의 선대 대감의 묘소이다. 이곳 산소의 형국과 좌향 때문에 상석(床石)이나 촛대석, 장군석(將軍石) 등의 돌을 산소에 얹으면 후손이 좋지 않다는 설이 있었다.
텃골 고성이씨는 명당에 산소를 모셨기 때문인지 대대로 벼슬이 끊이지 않았고 재산도 부유한 양반댁이었다. 후에 자손들이 집안 위세도 보이고 조상에게 효도도 할 겸 조상 묘소에 석물을 골고루 갖추어 놓았다. 즉 상석, 장군석, 촛대석, 비석 등 빠짐없이 갖추었다. 그런데 그 후에 갑자기 변란을 만나서 고성이씨 댁이 망하였다. 자손들은 모두 흩어져 이 근처에는 산소를 관리할 자손조차 없게 되었다.
근래에 임자 없는 산소에 도굴꾼들의 손길이 닿아 모든 석물을 훔쳐감으로써 대감 산소가 허전해졌다. 그렇게 석물이 없어진지 3~4년이 지나서 그 산소의 후손이 실전된 산소를 찾아왔고, 지금은 해마다 벌초를 하면서 관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모티프 분석]
「간좌 해복형 산소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석물 설치로 명당 훼손’, ‘금기를 어겨 망한 고성이씨’, ‘실전된 선대 묘를 다시 찾은 후손’ 등으로, 명당을 해쳐서 파명당(破明堂)이 되었다는 풍수전설이다. 본래 명당은 그에 따른 금기를 어기면 파손되어 명당으로서의 기능을 잃게 된다. 「간좌 해복형 산소 이야기」는 인간의 욕심이 명당을 훼손한 것이 아니라 더 잘 되기 위하여 산소에 석물을 했다가 파명당한 유형이다. 석물로 인하여 파명당이 되는 경우는 비봉형(飛鳳型)이나 금계포란형(金鷄抱卵型) 같은 새의 형국(形局)에 석물을 한 경우와 관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