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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1711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건송리 산 77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연정

[개설]

식파정(息波亭)은 1616년(광해군 8) 이득곤(李得坤)이 두건리 앞 냇가에 세운 정자로 앞면 2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1983년 백곡저수지를 확장하면서 두건리가 수몰되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처음 정자를 세울 당시의 두건동은 시인 묵객들에게 무릉도원의 절경을 연상하게 하는 독서지소(讀書之所)로 이름이 높았다. 빼어났던 경치는 식파정 팔경으로 전해져 온다.

[혼탁한 정쟁에 몸담지 아니한 고고한 학자, 이득곤]

식파정을 세운 이득곤은 1587년(선조 20) 지금의 진천읍 행정리(杏井里)[일명 살구우물]에서 태어났다. 옛적에 행정리 입구에는 살구나무가 있었고 그 살구나무 밑에 물맛이 좋은 우물이 있어서 살구우물 또는 살구물이라 불리었다.

살구우물마을 자랑비에는 마을의 유래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향기 좋은 살구나무 아래 큰 우물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이 뛰어나 마을 사람들의 식수는 물론이며 지나는 길손들의 휴식처였고, 특히 과거 시험 보러 갈 사람들이 이 우물에 살구꽃잎을 띄워 마시고 가면 반드시 과거에 급제한다는 말이 널리 알려져 살구우물이라 불렀다.”

이득곤은 양성이씨(陽城李氏) 16세손으로 자는 덕후(德厚), 호는 식파정이다. 본래 학문을 좋아하여 사서오경에 달통하여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당대의 식견 있는 많은 학자들과 교류하였다.

높은 학식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지자 벼슬길에 나갈 것을 권유받았으나, 광해군 때 혼탁한 정쟁에 몸담지 아니하고 향리에 은거하여 학문에 정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고, 속세를 떠난 듯한 선경에 식파정을 짓고 제현문인(諸賢門人)들과 식파지의(息波之義)를 맺고 친교를 나누었다. 이에 세상 사람들은 그를 ‘세가군자(世佳君子)요 상산진처사(常山眞處士)’라고 불렀다.

양성이씨의 시조 이수광(李秀匡)은 고려 문종 때 송나라에서 귀화해 온 사람이다. 이수광이 고려에 온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당시 송과 빈번한 문화 교류가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고려에 사신으로 와 화평 관계를 맺는 데 공을 세워 삼중대광보국(三重大匡補國)으로 양성군(陽城君)에 봉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이수광의 후손들이 400여 년 전부터 진천군 진천읍 두건리에 텃밭을 일구며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오다가 두건리가 수몰된 뒤 행정리, 건송리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 특히 백곡저수지 아래에 있는 행정리 주민 가운데 상당수가 양성이씨이다.

[물결도 쉬어 가는 흐린 세상의 아름다운 정자, 식파정]

식파정은 1839년(헌종 5) 후손들이 중건하였고, 1954년 중수를 거쳐 1991년 이득곤의 11대손 이영환(李榮煥)이 재건하였다. 이영환이 세운 식파정사적비(息波亭事跡碑)에 따르면, 1616년 이덕곤이 두건동 앞 냇가[지금의 진천읍 건송리 57]에 정자를 세우고 자신의 호를 따서 식파정이라 하였고, 1983년 백곡저수지 확장 공사로 수몰됨에 따라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정자 이름은 “사람의 마음은 물결과 같아 바람이 일면 욕랑(慾浪)이 이는 것이니, 마음의 욕랑을 잠재우도록 양성한다.”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 봉암(鳳岩) 채지홍(蔡之洪),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熱) 등이 지은 식파정 제영(題詠)이 『식파정시문집(息波亭詩文集)』에 전한다. 그중 식파정에 걸려 있는 김득신의 시를 음미해 보자.

‘터 잡아 집 짓고 그윽한 산속에 은거하니/ 남들은 옛날의 하황공으로 여기네/ 이제 두건을 살피니 풍광이 아름다워라/ 진정 무릉도원과 같은 감흥이 일어나누나[卜築幽居靜散中/ 人疑千古夏黃公/ 今觀斗建風光美/ 正興桃源趣味同]’.

[두런두런 소나무 숲이 옛 이야기를 전해 주는 식파정 가는 길]

국도 34호선을 타고 가다가 백곡저수지 인근에서 사송리 방향으로 접어들어 약 400m 더 가면 사정교가 나온다. 사정교를 건너기 바로 전 오른쪽에 ‘식파정 입구’라는 작은 안내 표석이 있다.

표석 맞은편 백곡체육공원 표지가 있는 산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가장 왼쪽으로 난 능선 길로 접어들어 올라가면 간간이 양성이씨의 묘지가 보이고, 제법 넓게 닦은 임도를 따라 14~15분 정도 가면 U자형 백곡저수지의 곡선 부분 위쪽 끝 꼬리 부분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모습의 식파정을 만날 수 있다. 현재의 도로 상황으로는 승용차로 가기 어렵고, 우기를 피한다면 사륜구동 차량으로는 진입이 가능하다.

돌아오는 길에 진천의 향토 시인 나순옥[한국문인협회 진천지부장]의 「식파정 가는 길」을 조용하게 읊조려 보면, 부질없는 세상사로 마음 어지러움이 심할 때 이곳 식파정의 운치를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산길로 접어들며/ 숨을 크게 고른다/ 꼿꼿한 노송들이/ 어깨 겯고 늘어서서/ 서늘한 시선들 모두/ 내게로만 집중된 길

합장하듯 손 모으고/ 한 발 한 발 내 딛는다/ 깨끗함을 만난다는 것은/ 내 남루를 내보이는 것/ 종아리 걷어 올리고/ 식파정을 찾아간다

그럴싸하게 가려도/ 학문하는 목적이/ 신분 상승 수단인 것은/ 지금과 다를 바 없었건만/ 벼슬길 열어 주어도/ 외면할 수 있음에랴

파도조차 쉬어 간다는/ 식파정에 들면/ 끊임없이 넘실대는/ 마음속 파도 잠재울까

죽도록 내가 싫은 날/ 식파정 바람이 그립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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