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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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在福 |
이칭/별칭 | 재창(在昶),유재창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제우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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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두성마을 |
성별 | 남 |
생년 | 1924년 4월 12일 |
몰년 | 미상 |
대표경력 | 한국광복군 경위대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명(異名)은 유재창(柳在昶)이다. 1924년 4월 12일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두성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었다가 탈출,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어 독립운동을 하였다.
[활동사항]
유재복(柳在福)[1924~?]은 1943년 9월 진천에서 오상근(吳相根)과 같이 징집을 피해 도피하다가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중국 산동성 제남현 덕평 지역에서 군사훈련을 마치고 양자강 유역의 무창·한구·장사 등지의 전선을 전전하였다. 남부전선인 호남성의 수동강 지구에 주둔하고 있을 때 인근에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이 활동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오상근·신인식(申仁植) 등과 함께 1944년 1월 일본군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유재복과 오상근·신인식은 중경(重慶)으로 가는 도중에 일본군 간첩으로 오인되어 중국 관헌에 체포되어 감옥에서 신음하던 중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金九) 주석의 주선으로 출감되어 중경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었다. 1945년 2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편성 관할하고 있던 토교대(土橋隊)[보충대]에 배속되었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유재복의 공적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