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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326
한자 降州
영어음역 Gang-j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김낙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고려 전기
시행연도/일시 고려 전기
폐지연도/일시 성종대
시행처 고려 조정

[정의]

고려 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명칭.

[개설]

강주(降州)는 지금의 충청북도 진천군을 말하는 것으로, 고려 초기 제정된 이름이다. 995년(성종 14)에 지방관으로 자사(刺史)를 파견하였고, 1005년(목종 8)에 그것이 폐지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청주목에 소속되었다.

[관련기록]

『고려사(高麗史)』권56, 지리1, 청주목(淸州牧)조에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인데 신라 경덕왕흑양군(黑壤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강주(降州)라고 칭하였으며 후에 지금 명칭[진주(鎭州)를 의미]으로 고쳤다.’ [本高句麗今勿奴郡 新羅景德王改爲黑壤郡 高麗初稱降州後改今名]라고 한 기록이 나온다.

[내용]

강주는 진천의 고려 초기 명칭으로 본래 삼국시대 고구려의 금물노군으로 불렸다가 신라 경덕왕흑양군(黑壤郡)으로 이름을 고쳤다. 그러다가 고려 초 들어서 이름을 강주로 고쳤다고 한다. 흑양군강주로 고친 시기는 940년(태조 23)이 유력해 보인다. 940년 3월에 “여러 주·부·군·현의 칭호를 고쳤다.”는 기록에 근거해 유추해볼 수 있다. 이 때는 후삼국이 통일되고 몇 년이 경과한 시점으로, 새로 확보한 지방에 대한 군현제적 질서를 재편하여 하나의 통일된 국가체제를 갖추기 위한 우선적인 조치였다.

강주에는 성종 때 자사가 파견되었는데, 1018년에 청주목에 소속되었다. 후삼국시대 고려가 후백제와 충청북도 지방에서 대치하고 있었을 때 이 지역의 지방 세력들의 향배는 두 국가의 세력 확장에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진천의 호족 세력들이 일찍이 왕건에게 귀부함으로써 고려 태조 왕건의 강력한 지지 세력이 되었다. 고려 초 진천을 강주라고 부른 것은 이곳의 호족들이 일찍 왕건에게 내항(来降)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변천]

고구려시대에는 진천을 금물노군 일명 만노군(萬弩郡), 혹은 수지(首知) 신지(新知)라 하였으며, 신라 때에는 흑양군이라 고치고 그 후 황양군(黄壌郡)이라 하였다. 고려 초에 이르러 강주라 한 후 다시 진주(鎭州)라 개칭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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