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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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충비(忠婢). 개덕은 문백면 파재에 살던 유의직 집안의 종이었다. 유의직이 태어나기 5개월 전에 유의직의 아버지가 죽고, 또한 유의직이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어머니 최씨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개덕은 젖먹이 자식에게는 미음을 먹이고 유의직에게는 자신의 젖을 먹여 키웠다. 그 후 개덕은 유의직이 성장하자 채지홍(蔡之洪)에게 학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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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는 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다. 고려는 건국 후 후백제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특히 고려와 후백제와의 대결은 양국의 접경지대인 보은·회인·문의·청주·제천·충주 일대의 충청북도 지역과 상주·김천·성주 등지의 경상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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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조영된 무덤. 고분(古墳)은 사전적 의미로는 옛무덤 혹은 고대에 만들어진 무덤을 말하며, 고고학에서는 개념을 한정하여 선사시대부터 삼국통일 이후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성행하고 고분축조가 쇠퇴한 시기까지의 무덤을 말한다. 고분은 무덤 자체의 양식 및 규모와 부장된 유물의 양상을 통해, 만들어진 당시의 정치·사회·문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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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위종을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진천군지(鎭川郡誌)』에 따르면, 괴산피씨(槐山皮氏)는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고려에 안렴사로 왔다가 귀화한 피위종(皮謂宗)을 시조로 하며, 홍천(洪川)·단산(丹山)·충주(忠州)·괴산·청안(淸安)으로 갈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정미보(丁未譜)』에는 금자광록대부 신경위 대장(金紫光祿大夫神慶衛大將)으로 공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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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에 있는 주요 도로와 교통 수단 및 관련 시설. 충청북도 진천군은 중부고속국도 진천인터체인지를 통하여 경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 등과 연결되고 특히 중부고속도로를 통하여 서울 및 수도권, 청주·대전 등의 대도시와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진천군 발전에 기폭제가 되었다. 한편 진천군에는 철도는 통과되고 있지 않으나 인접한 증평군에는 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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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한국 역사에서 시대구분의 기준은 시간적 의미에서 보면, 고려 이전을 고대, 고려를 중세, 조선을 근세, 문호개방 이후 일제강점기를 근대, 그리고 해방 이후를 현대라는 용어로 사용하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자 한다. 물론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라는 용어는 단순한 시간의 전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사회발전 즉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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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김장열·박명섭의 반공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 1945년 해방 후 미·소 양군의 주둔으로 우리나라는 38선을 경계로 분단되었고, 신탁통치 문제로 반탁(反託)과 찬탁(贊託)으로 양분되면서 우익 진영과 좌익 진영이 대립하게 되었다. 진천 지역에서도 양 진영으로 갈라져 사상적 대립을 하게 되었다. 1946년 5월, 가산리 폭동사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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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강도예 캠프는 이성기 씨 가족이 힘을 합쳐 운영하는 곳이다. 캠프에서 하는 체험 중 비누 만들기와 염색 등은 이성기 씨 딸이 권위자라고 한다. 천연 염색의 경우 진천군에 의뢰하여 함께 하는데,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인지 딸의 순발력을 못 따라간다고 이성기 씨가 멋쩍게 웃는다. 문강도예는 1996년 폐교된 신덕초등학교를 빌려서 문을 열었다. 벌써 14년째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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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던 산이라고 하여 봉화산, 봉화뚝으로 불리운다. 소나무가 무성한 솔산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이는 지명으로 소을산(所乙山), 소인산(所仁山), 소을산(蔬乙山), 소월산(所月山) 등이 있다. 진천군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문안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남쪽으로는 미호천을 둘러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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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문백면 사양리와 문덕리에 위치한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 주거 및 분묘 유적. 사양리 유적(思陽里 遺蹟)은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문덕리 일원에 전기·전자 농공단지를 조성하게 됨에 따라 조성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유적의 입지는 해발 350.2m의 양천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해발 76m 내외의 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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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국교회. 성공회는 16세기 영국에서 종교 개혁의 결과 성립 및 발전하여 세계 전역에 퍼진 국가별 독립·자치 교회들의 교단으로 영국교회·앵글리컨처치·영국성공회·잉글랜드교회라고도 한다. 성공회라는 명칭은 ‘하나요,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적인 교회’라는 교회에 관한 신앙 고백 가운데 성(聖)과 공(公) 두 자에서 유래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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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이 속한 지방 행정구역. 고려시대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성종대 전국을 10도(道)로 나누었다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여 5도로 개편하였다. 이때 양주와 광주 소속의 기존 군현과 청주·충주 소속의 군현들을 합하거나 나누어 편성하면서 명칭의 변경이 있었으나, 충숙왕 때는 양광도로 만들었다. 『고려사(高麗史)』권 56, 지(志) 제10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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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문을 시조로 하고, 허정과 허병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양천허씨(陽川許氏)는 허선문(許宣文)을 시조로 하고, 조선 후기에 허병(許炳)이 진천군 이월면 신월리로 이주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양천허씨의 시조 허선문은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비(金首露王妃)의 30세손으로 전한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공암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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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진천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백제는 일찍이 한성시대에 진천을 자신의 세력권에 넣었으며, 백제의 세력이 쇠퇴하고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방진출의 교두보로서 진천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신라 역시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진천을 장악하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와 고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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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명암리와 이월면 노원리 궁골마을에 걸쳐 있는 산. 옥녀봉(玉女峰)[457m]은 ‘옥녀가 금비녀를 꽂고 거문고를 타는 모습’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전국적으로 옥녀봉은 수백의 예가 있으며, 그중 어떤 것은 신선봉(神仙峯)과 병용되는 것도 있다. 유래 또한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의 명당인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 옥녀가 비단을 짜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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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문학가. 유촌(柳村)은 1907년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355번지[봉죽길 76-11]에서 태어나 1961년에 세상을 떠났다. 유촌은 1927년 2월 청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진천군 이월면 서기 겸 기수로 근무하다가 1931년 8월 사임하였고, 1931년 9월부터는 제천군 농회 기수로 근무하다가 193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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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전개된 항일 국권회복운동. 의병항일전은 외세 침략에 대한 민족으로서의 항쟁이며 생존권을 위한 저항으로 그 원류는 인간 본연적인 데 있으며, 한국사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이다. 고려·조선 때 대거란전이나 대몽항쟁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의병 등의 오랜 전통이 개항기에 들어와서 부활한 것이다. 또한 구한말 의병항일전의 사상적 맥락의 하나는 민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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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후영어은(後潁漁隱). 고조할아버지는 이원(李黿)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발(李渤)이며, 할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 아버지는 진사 오촌(梧村) 이대건(李大建)이다.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도(金燾)의 딸이다. 부인은 여흥민씨이고, 아들로 이분이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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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시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양성(陽城). 호는 회헌(晦軒). 이정영(李廷英)[?~1592]은 1592년(선조 25) 음죽현감으로 재직 중에 임진왜란을 맞았다. 4월 일본이 15만 8000명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하여 침범해 왔다. 왜군은 조총을 가지고 북상하며 4월 24일 상주에서 이일의 군을 격파하고, 16일에는 조령을 넘어 이튿날 충주로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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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중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대도시와 교통이 편리함에 따라 종래의 미작 농업은 고품질 상품 생산과 원예 농업으로 전환되었고 공업화가 촉진되었으며 풍부한 관광 자원과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이점 등으로 배후에 풍부한 관광 시장을 지니고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은 충청북도 중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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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득여(得汝), 호는 영서거사(穎西居士). 판서 임방(任埅)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사간원대사간 임종주(任宗周)이다. 임로(任魯)[1755~1828]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세상의 명리화색(名利貨色)에는 일절 욕심이 없었다. 1777년(정조 1) 음서로 관직에 나갔으나 아버지가 당대의 세도가 홍국영(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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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진천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본과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음력 4월 13일 일본군의 제1번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산포 침략을 시작으로 1598년(선조 31) 11월 노량해전(露粱海戰)을 끝으로 사실상 종결될 때까지 무려 7년간 한반도를 전화(戰禍)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한 중세 동북아시아 세계의 국제전적 교전이었다. 전쟁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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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지질, 지형, 기후 등의 지리적 조건. 충청북도 중앙 서단을 차지하고 있는 진천군은 중부 내륙의 분지 지형으로, 진천 편마암 복합체가 넓게 분포하며 대륙성 기후를 띠고 있다. 토지의 비옥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지형상의 제약도 있어 주로 밭농사가 이루어지며, 곳곳에 있는 산악 지대의 주능선 비탈면에는 신갈나무 군락이 드넓게 발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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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서 여성 농업인들을 중심으로 개최된 행사. 충청북도 여성농업인대회는 각종 교육 행사 프로그램을 추진하여 충청북도 여성 농업인의 대내외적 위상 정립과 농권 보호, 경영 주체로서의 영농 의지를 다지는 기회를 마련하고, 여성 농업인 및 가족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단합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격년으로 개최하는 행사이다. 행사는 9월 중 한국여성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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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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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 지표면의 기복 및 모양이나 형태. 차령산맥이 진천군과 경기도 안성시의 경계를 이루며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고, 진천군은 차령산맥 남단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1. 북서부 지역 진천군 북서부는 변성암류가 분포하는 험준한 지역으로 광혜원면 구암리 북쪽으로 덕성산(德城山)[519m], 백곡면 양백리 서북쪽으로 서운산(瑞雲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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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고려 태조가 궁예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뒤 청주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진압하기 위하여 진천에 군사를 파견하여 청주 세력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 청주를 진압하였던 전초기지였다는 의미에서 진주(鎭州)라고 명칭을 변경하였다. 진주는 고려군이 청주세력을 ‘진압(鎭壓)한 곳’, 혹은 고려군이 ‘진수(鎭守)한 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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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충청북도는 역사적·지리적으로 서울과 삼남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개신교 초창기부터 각 선교부의 선교 거점이 되었다. 1900년을 전후하여 충청북도 지역 특히 청주 지역에는 장로교를 비롯한 감리교·침례교 선교사들의 간헐적 왕래를 통한 순회방식의 전도가 추진되었다. 순회방식의 전도란 결국 도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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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의 성당.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모임과 미사 및 공동체 묵상을 통해 하느님의 교리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56년 6월 1일 진천성당이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부지는 10,909㎡이었고 건물은 성당과 사제관 등 463㎡ 규모였다. 그 후 부지와 부속 건물들을 확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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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있는 시외버스 정류장. 진천시외버스터미널의 서쪽에는 GS진천터미널주유소, 동쪽으로 길 건너편에는 대강빌딩, 진보빌딩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진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서울·인천·성남·부평 등 수도권, 청주·충주·천안·대전 등 충청권의 직행버스와 진천군·음성군·청주시 전역 등 인근 지역의 농어촌버스 등을 연계하여 운행한다. 진천시외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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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 진천군은 차령산맥이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달리고 있어 산악이 많고 동북부는 광혜원면과 백곡면의 경계를 흐르는 미호천 지류들이 남류하여 비교적 넓은 진천평야를 이루고 있다. 진천군은 충청북도 3시 10군 중의 하나로서 삼한시대에는 수지(首知) 또는 신지(新知)로, 고구려시대에는 금물노군(今勿奴郡)으로, 신라 관할 이후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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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로마 교구의 주교인 교황을 으뜸으로 삼는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 천주교는 사도(使徒)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이다. 이를 ‘구교’, ‘가톨릭교회’ 등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1791년 신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으로 선교의 어려움을 겪다가 1882년 한미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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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서 개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비 개덕 이야기」는 문화유씨(文化柳氏) 집안의 유복자가 된 유의직(柳義直)을 정성을 다해 키워 유씨 문중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는 노비 개덕(介德)에 대한 인물설화이다. 이에 유씨 후손들은 개덕의 묘를 유씨 선산에 모시고 지금까지 시사를 지내고 있다. 진천 고을의 유림들은 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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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우리민족은 일제의 무조건 항복과 패망으로 35년간의 일제 사슬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해방 후 국제정세는 우리민족의 자유로운 국가건설을 어렵게 만들어갔다. 일본을 패망시키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북을 분할 점령하고,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와 소련식 사회주의 국가를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