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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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源面 |
영어공식명칭 | Hwawon-mye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병삼 |
개설 시기/일시 | 20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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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80년 05월 02일 - 행정리 내주리, 외주리를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주광리로 합병 |
변천 시기/일시 | 1980년 05월 02일 - 행정리 신주광리를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청룡리에 신설 |
화원면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 |
성격 | 법정면 |
면적 | 90.105㎢ |
가구수 | 3,967세대 |
인구[남/여] | 7,456명[남자 3,734명|여자 3,722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에 속하는 법정면.
[명칭 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화원면을 설치하였는데, 조선 초에 설치한 황원곶목장(黃原串牧場)의 ‘원(原)’ 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에 장서면(場西面)과 장목면(場牧面)으로 편제되었다가, 1906년(광무 10)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감목관이 혁파되고, 그 자리에 관저면(管底面)이 신설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서면과 장동면, 그리고 관저면 등 3개 면을 합하여 해남군 화원면을 개설하였다. 이런 지명은 조선 초에 설치한 황원곶목장(黃原串牧場)에서 비롯되었다.
화원은 백제 때 황술현(黃述縣),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에 황원현(黃原縣)으로 개명하여 지금의 강진 땅인 양무군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황원군으로 승격하였다가 다시 황원현으로 강등되어 1018년(현종 9)에 영암군으로 소속을 옮겼다. 조선시대에는 1445년(세종 27)에 황원곶 목장을 설치하면서 영암에서 해남 땅으로 소속을 옮겨 이후 해남 땅으로 계속 남게 되었다. 영역은 지금의 화원면과 문내면, 그리고 황산면 일부 지역을 포함한 지역이다.
화원의 면리는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에 처음 나오는데, 장동면(場東面)과 장서면(場西面)으로 편제되었다. 장동면은 총 697호, 인구 1,832명[남자 656명, 여자 1176명], 장서면은 총 432호, 1,181명[남자 478명, 여자 703명]의 주민이 살았다. 『여지도서』보다 30년 후에 발간된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기재된 현황을 보면, 장목면은 18개 마을에 총 454호, 1,521명[남자 741명, 여자 780명], 장서면은 13개 마을에 총 595호, 1,654명[남자 783명, 여자 871명]의 주민이 살았다. 두 면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나 명칭이 장동면에서 장목면(場牧面)으로 바뀌었고, 주민 숫자도 『여지도서』보다 더 줄어 들었다. 대신 장서면 주민의 숫자는 대폭 늘어났다. 아마도 황원감목관이 거주하는 지역이 장동면에서 제외되면서 일어난 변화로 보인다. 두 면은 황원곶 목장을 중심으로 서쪽에 장서면, 아래쪽에 장목면이 있었다.
화원의 면리는 1906년 지방행정 제도를 개편하면서 약간의 변동이 일어난다. 황원감목관을 폐지하고 그 자리에 관저면(官底面)을 새로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화원 지역은 장동면과 장서면, 그리고 관저면 등 3개 면으로 편제되었다. 이때 장목면이 장동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2년에 편찬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舊韓國 地方行政區域 名稱一覽)』의 기록에 따르면, 화원 지역은 장동면에 20개, 장서면에 20개, 그리고 관저면에 7개 마을 등 총 47개 마을이 있었다. 『호구총수』에 나오는 31개 마을과 비교할 때 16개 마을이 늘어난 것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동면과 장서면, 그리고 관저면 등 3개 면을 합쳐 화원면을 개설하고, 47개 마을을 15개 법정리로 개편하였다. 당시 화원면에 편입된 법정리는 금평리(錦坪里), 청룡리(靑龍里), 인지리(仁智里), 주광리(周光里), 화봉리(花峯里), 산호리(山湖里), 장춘리(長春里), 성산리(星山里), 마산리(馬山里), 영호리(靈湖里), 구림리(鳩林里), 월호리(月湖里), 매월리(梅月里), 후산리(厚山里) 등이다. 당시 화원면의 마을 개편 현황은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1917]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화원면(花源面) 지역은 화원면은 1980년 2월 1일 행정리 후포리를 후포와 온덕으로 분할하고, 1980년 5월 2일 행정리 내주리, 외주리를 주광리로 합병하고 행정리 신주광리를 청룡리에 신설하면서 약간의 변동이 일어났을 뿐 1914년 개편 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자연환경]
화원반도의 끝 부분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금호호, 서쪽으로 바다, 북쪽으로 해남만이 있다.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 농지는 동쪽 금호호와 남서쪽의 바닷가에 주로 분포한다. 주요 산은 일성산(日星山)[335m], 운거산(雲居山)[300m], 지령산[294m], 매봉산[247.7m], 깃대봉[231.1m], 큰봉산[235.5m] 등으로 해발 200m 넘는 산들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조선지형도』에서 화원반도를 살펴보면, 서쪽과 동쪽 일대의 해안선은 드나듦이 복잡하고 여러 섬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이후 활발한 간척사업으로 지금의 해안선은 그때보다 단조로워졌고, 섬들도 없어졌다.
[현황]
화원면은 남쪽으로 문내면과 인접하여 있고, 동쪽으로 금호호를 사이로 산이면과 마주보고 있으며, 북쪽으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영암 삼호읍과 목포 신외항을 바라보고 있으며, 서쪽으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장산면과 마주하고 있다. 2018년 1월 31일 현재 면적은 90.105㎢이며, 15개 법정리, 44개 행정리에 3,967가구, 7,456명[남자 3,734명, 여자 3,72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산물은 쌀, 보리, 마늘, 배추, 고추 등을 재배하고 있으며, 특산물로 김치를 생산하고 있다. 어업에 종사하는 가구도 있다. 농업용수는 개초저수지, 화원저수지, 석호저수지, 신덕저수지, 후산저수지, 수동저수지 등을 이용하고 있으며, 동쪽 간척지는 금호호 용수를 활용하고 있다. 주요기관은 화원면사무소, 전남해남경찰서 화원파출소, 화원우체국, 화원119지역대, 화원농협, 화원초등학교, 화원중학교, 화원고등학교 등이 있다.
화원 지역에는 화원지방산업단지, 오시아노관광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구 증가 요인이 생겼다. 금호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목포로 출퇴근이 가능해지면서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많이 늘지 않았다. 교통은 국도 제77호선이 화원면을 관통하듯 지나고 있다. 금호방조제·영암방조제[1985년 착공, 1996년 준공] 만들어지면서 개통된 국가지원지방도 제49호선은 영암과 목포로 가는 시간을 단축시켰다.
문화재는 해남 서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2011년 6월 21 보물 제1715호 지정], 해남 구 목포구 등대[2008년 7월 14일 등록문화재 제379호 지정], 해남 화원 청자 요지[2004년 2월 13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220호 지정], 서동사 대웅전[1990년 2월 24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4호 지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