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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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洞寺 |
영어공식명칭 | Seodong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절골길 244[금평리 571-1]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황호균 |
건립 시기/일시 | 886년~896년 - 서동사 고운 최치원이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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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592년~1598년 - 서동사 갈천사로 불림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779년 - 서동사 복구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870년 - 서동사 중수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24년 - 서동사대웅전 중수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45년 - 서동사대웅전 중수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46년 - 서동사대웅전 중수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50년 - 서동사대웅전 중수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70년 - 서동사 중수, 서동사대웅전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0년 2월 24일 - 서동사대웅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4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1년 6월 21일 - 해남 서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보물 제1715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1년 8월 26일 - 해남 서동사 동백나무·비자나무 숲 전라남도 기념물 제245호로 지정 |
중수|중창 시기/일시 | 2018년 - 서동사대웅전 해체 보수 공사 |
최초 건립지 | 서동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절골길 244[금평리 571-1] |
성격 | 사찰 |
창건자 |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
전화 | 061-532-0415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서동사의 자세한 내력은 알려지지 않으나 1980년대 초 지금의 대웅전 지붕을 보수할 때 발견된 「서동사중수상량문」[1870]과 「서동사중수서」[1870] 현판 기록을 통해 개략적인 발자취를 파악할 수 있다. 이 기록들에 따르면 서동사는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887~896]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 임진[정유]왜란 때 병화(兵禍)로 모두 소실되었지만, 대웅전은 칡뿌리 등이 건물을 감싸고 있어 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갈천사(葛天寺)로 불리었다. 1779년에 복구하였다가 다시 1870년(고종 7) 의윤(宜胤)이 주축이 되어 정기(正己), 진일(賑一) 등의 승려가 발원하여 중수하였다. 당시의 감역은 홍지안과 최명륜이었으며, 중수기는 명팔윤이 서문을 짓고 김여식이 글을 썼다. 다라니 경판은 1858년(철종 9)에 만들어졌으며, 끝부분에 월여 승려가 1858년 9월 화원 목장의 서동사에서 수명과 복덕을 기원하는 「다라니경」을 조성·간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다라니경」은 지금은 도난당하고 없다. 1924년과 1945년, 1946년, 그리고 1950년에 승려 청학이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1970년에 불사가 있었으며, 이때 대웅전의 기와를 바꾸고 삼존불상의 개금 불사를 하였다. 1989년에 종각을 짓고 범종을 봉안하였다. 이후 천불전 등 많은 건물을 신축하였으며, 2018년에 대웅전 해체 보수 공사를 하였다.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승려는 1명이고, 신도 수는 1,000여 명이다. 사찰 내에는 대웅전, 운정당, 사은각, 관음전, 운차루, 세심당, 서동각, 칠성각, 천불전, 일주문 등 10동의 전각이 산재해 있다. 신도 600여 명이 신도회를 구성하여 사찰의 불사와 법회 지원 봉사를 하고 있다. 서동사 일원은 전통사찰 제37호로 지정되었다.
[관련 문화재]
2018년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은 서동사 대웅전[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4호], 해남 서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제1715호, 삼불은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불을 의미, 1650년], 해남 서동사 동백나무·비자나무 숲[전라남도 기념물 제245호]이다. 이 밖에 법고[조선 후기]와 대웅전 편액[조선 후기]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