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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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智里 |
영어공식명칭 | Inji-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인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병삼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인지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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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인지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4.351㎢ |
가구수 | 97가구 |
인구[남/여] | 179명[남자 84명|여자 95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인지마을은 본래 장수마을과 한 마을이었다가 분리되었다. 정직하고 지혜롭게 살라는 의미에서 인지(仁智)라 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장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서면의 인지리, 장수리, 예의리를 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인지리로 개설되었다. 예전에 인지리와 장수리는 ‘공수개’라 부르는 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공수개’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나온 공수포리(公須浦里)와 같은 마을이다. 개와 포(浦)가 같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마을회관 서북쪽에 밀물과 썰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선창이 있어서, 접안 시설 없이 밀물 때면 배가 들어와서 사람과 짐을 실었다고 한다. 이곳이 공수포구인 것으로 보이나, 간척으로 없어졌다. 현재 인지리는 인지마을과 장수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인지마을은 1555년 밀양박씨 박동길(朴東吉)이 왜구의 침입을 피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장수마을은 1267년경 초계추씨 추형수(秋亨壽)가 삼별초의 난을 피하여 제주로 갔다가 다시 피난와서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입향조 추씨가 100세까지 장수하고, 마을에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 장수(長壽)라 부르다가 끝 글자를 물 수(水)로 바꿔 장수(長水)라 하였다고 한다.
[자연환경]
남동쪽에 초봉골산이, 북쪽에 연중제가 자리한다.
[현황]
인지리(仁智里)는 북쪽으로 후산리, 동쪽으로 신덕리, 남쪽으로 화봉리, 서쪽으로 주광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4.351㎢이며, 인지리, 장수리의 2개 행정리에 97가구, 179명[남자 84명, 여자 9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 소득원 밭작물로 배추와 양파를 재배하고 있다. 농업용수는 연중제와 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온 물을 이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