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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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충비(忠婢). 개덕은 문백면 파재에 살던 유의직 집안의 종이었다. 유의직이 태어나기 5개월 전에 유의직의 아버지가 죽고, 또한 유의직이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어머니 최씨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개덕은 젖먹이 자식에게는 미음을 먹이고 유의직에게는 자신의 젖을 먹여 키웠다. 그 후 개덕은 유의직이 성장하자 채지홍(蔡之洪)에게 학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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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벌도리를 시조로 하고, 최천주·최건주 형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최씨의 대종(大宗) 경주최씨(慶州崔氏)는 신라 6촌 중 고허촌(古墟村)[지금의 경주 중심부]의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를 시조로 하고, 그의 후손이며 신라의 석학(碩學)인 최치원(崔致遠)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최치원·최승우(崔承祐)·최언위(崔彦僞) 등 세 사람은 ‘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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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는 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다. 고려는 건국 후 후백제와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특히 고려와 후백제와의 대결은 양국의 접경지대인 보은·회인·문의·청주·제천·충주 일대의 충청북도 지역과 상주·김천·성주 등지의 경상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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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에 있는 상산임씨 세거지. 구곡리(九谷里)는 원래 구산동(龜山洞)으로 불린 곳으로 구곡리에서 평산리로 넘어가는 굴고개[일명 굴티]를 기준으로 내구와 외구로 나뉜다. 구산동이란 지명도 굴고개에서 유래하였다고 여겨진다. 상산임씨(常山林氏) 시조 임희(林曦)는 신라 말 진천 지역의 호족으로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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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최씨는 천성이 조용하고 정숙하였고, 10세 전부터 문밖출입을 삼가하며 오로지 부모를 섬기는 일에만 정성을 다했다. 12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슬퍼하며 상례를 치르는 행동이 어른과 같았다. 18세에 김인진(金鱗鎭)과 혼인하여 김씨 집안으로 출가한 후에는 부도(婦道)를 다하여 남편과 시부모를 받들었다. 수년 후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슬픔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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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을 시조로 하고, 서거정의 후손이 입향하여 세거한 충청북도 진천군의 성씨. 달성서씨(達城徐氏)는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후손이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로 이주하여 세거하기 시작하였다. 이주 연원 및 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시조 서진(徐晉)은 고려조에 판도판서(版圖板書)로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지고 달성을 식읍으로 받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본관을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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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팔급을 도시조로 하고, 임희를 중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범임씨(汎林氏)의 도시조는 당(唐)나라 문종 때 한림학사(翰林學士) 임팔급(林八及)으로, 간신들의 참소를 받아 신라로 건너와 팽성(彭城)의 용주방(龍珠坊)[지금의 평택 용포리]에 정착하면서 본관을 평택으로 삼게 되었다. 평택임씨는 후대에 와서 선산(善山)·진천(鎭川)·예천(醴泉)·부안(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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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진천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백제는 일찍이 한성시대에 진천을 자신의 세력권에 넣었으며, 백제의 세력이 쇠퇴하고 고구려가 남하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방진출의 교두보로서 진천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으며, 신라 역시 북방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진천을 장악하였다.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와 고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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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열녀(烈女)는 한마디로 ‘절개가 굳은 여성’을 지칭한다. 이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편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정절을 지켜낸 여성을 뜻한다. 대부분의 열녀들은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남편이 죽으면 수절하거나 남편을 따라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러한 열녀들의 행적은 멀리는 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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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1269년(원종 10)에 진천임씨인 임연(林衍)이 김준(金俊)을 제거하고 최고 집정자가 되자, 왕이 임연의 고향인 진주[창의현(彰義縣)]을 고쳐 의령군(義寧郡)으로 승격시켰다. 지방관으로 지의녕군사(知義寧郡事)를 두었다. 『고려사(高麗史)』 권56, 지10 양광도 진주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259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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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열녀. 이민회(李敏會) 처 최씨(崔氏)는 23세에 남편을 잃었는데, 바로 남편을 따라가려 하였으나 늙은 시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있어서 목숨을 버리지 못하였다. 시아버지가 병으로 누워 있는 4년동안 지성을 다하여 약을 달여 드렸으며 산나물을 먹고 싶다 하자 눈 쌓인 산에 들어가 나무의 눈을 얻어 국을 끓여드리고, 또 물고기가 생각난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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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인 임연(林衍)이 김준(金俊)과 함께 최의를 제거하고 최씨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이에 임연의 고향인 진주(鎭州)를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시켜 그의 공훈에 대해 포상했다. 『고려사(高麗史)』권56, 지리지 양광도 청주목 진주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종 46년 임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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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에서 최씨 형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최씨 형제 이야기」는 가산리 개미저리[현재의 신계리 하신] 마을에 살던 최씨 집안의 형이 공부에 열중하여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가던 도중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 것을 팔다리 한 짝이 없는 외쪽이동생의 지혜로 탈출하였다는 우애담이다. 1994년 진천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진천군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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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효자 최유경·최사흥 부자의 정려각. 전주 출신인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공민왕 대에 사헌장령(司憲掌令), 우왕 대에 전법총랑(典法摠郞)·양광도안렴사(楊廣道按廉使) 등을 거쳐 조선 왕조가 개창된 후에는 원종공신(原從功臣), 경기·충청도의 도체찰사를 거쳐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판한성부사(判漢城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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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서 개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비 개덕 이야기」는 문화유씨(文化柳氏) 집안의 유복자가 된 유의직(柳義直)을 정성을 다해 키워 유씨 문중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는 노비 개덕(介德)에 대한 인물설화이다. 이에 유씨 후손들은 개덕의 묘를 유씨 선산에 모시고 지금까지 시사를 지내고 있다. 진천 고을의 유림들은 개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