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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331
한자 彰義縣
영어음역 Changuih-yu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낙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1259년(고종 46)연표보기
시행연도/일시 1259년(고종 46)
폐지연도/일시 1269년(원종 10)연표보기

[정의]

고려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행정구역 이름.

[제정경위 및 목적]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인 임연(林衍)김준(金俊)과 함께 최의를 제거하고 최씨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이에 임연의 고향인 진주(鎭州)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시켜 그의 공훈에 대해 포상했다.

[관련기록]

『고려사(高麗史)』권56, 지리지 양광도 청주목 진주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종 46년 임연의 내향(內鄕)이므로 올려 창의현으로 삼아 영(令)을 두었고 원종 10년에 또 임연으로 인하여 지의령군사(知義寧郡事)로 올렸다가 임연이 죽임을 당함에 다시 내려 지금의 이름(진주)을 칭하게 되었다[高宗四十六年, 以林衍內鄕, 陞爲彰義縣, 置令, 元宗十年, 又以衍之故, 陞知義寧郡事, 及衍誅, 還降, 稱今名].”

[내용]

창의현은 고려 무인정권기 집정자였던 임연의 내향인 진주의 다른 이름이다. 임연은 어려서부터 힘이 세었고, 몽고가 침략하였을 때 진주의 주민들을 모아 몽고군에 항전하였으며, 그 공으로 하급 무관직인 대정(隊正)에 보임되었다. 그 후 임연이 아버지처럼 섬긴 김준이 최씨 정권의 마지막 집정자였던 최의를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할 때 큰 공을 세워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임명되었고, 그의 고향인 진주창의현으로 승격시켰다.

[변천]

본래 진천 지역은 고구려의 금물노군(今勿奴郡)으로 신라 경덕왕이 고쳐 흑양군(黑壤郡)이라 칭하였고, 고려 초에 강주(降州)라 하였다가 뒤에 지금 이름[진주]으로 고쳤다. 995년(성종 14)에 자사(刺史)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이를 파하였으며, 1018년(현종 9) 청주에 내속하였다. 1259년(고종 46) 임연의 고향이므로 창의현으로 삼았다가 1269년(원종 10) 다시 지의령군사(知義寧郡事)로 올렸다. 뒤에 임연이 죽임을 당하자 다시 진주로 부르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진천 출신 인물 임연이 무인정권의 최고집정의 자리에 오르면서 그의 고향인 진천이 위상에 걸맞게 승격하여 중앙의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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