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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694
한자 烈女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연승

[정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개설]

열녀(烈女)는 한마디로 ‘절개가 굳은 여성’을 지칭한다. 이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편을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정절을 지켜낸 여성을 뜻한다. 대부분의 열녀들은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키기 위해 남편이 죽으면 수절하거나 남편을 따라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러한 열녀들의 행적은 멀리는 순장 제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겠으나 그보다는 여성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식하지 않고 남성의 예속물이나 종속물로 인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즉 유교적 국가 이데올로기로서 여성의 희생을 유도하고 그 행적을 칭송하던 문화 현상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열녀의 유형]

옛 기록이나 구전으로 전해 오는 열녀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면 다양한 유형의 열녀들이 보인다. 열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을 극복해야 하는데, 예를 들면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정절을 지키거나, 정절을 지킬 수 없는 극단의 상황에 처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열녀의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혼인 전 남편이 죽자 따라 죽거나 평생을 수절하는 여인’, ‘기혼녀로서 남편이 죽자 따라 죽거나 평생을 수절하는 여인’, ‘남편이 살아 있을 때나 죽은 후에 정절을 잃고 목숨을 끊는 여인’ 등이 있다.

열녀는 시대나 지역을 막론하고 어느 곳이든 존재한다. 그러나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과부가 되면 마땅히 수절을 해야 한다거나, 위난을 당하면 목숨을 버려서라도 반드시 정조를 지키는 것이 부녀자의 도리로 정착된 것은 조선시대의 일이다. 특히 유교가 성숙기에 들어선 중종 이후 열녀는 미풍양속의 본보기로서 당시 사회의 거스를 수 없는 철칙이 되어 버렸다.

죽는 방법도 가지가지여서 식음을 전폐하여 죽음을 맞거나 극약을 먹고 목을 매기도 했으며, 칼로 자결을 하거나 강물이나 우물에 몸을 던지는 등 여러 가지였다. 이 외에도 남편이 죽은 후에 따라 죽으려고 했지만, 나이 든 시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의무를 저버릴 수 없어 때를 늦춰 시부모가 다 돌아가신 후에 자결을 택한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효부와 열녀의 행위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사례]

김업복(金業福) 처 이씨나 김인진(金麟鎭) 처 최씨는 효부이자 열녀의 형태를 복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업복(金業福) 처 이씨는 병세가 급박한 시부모께 단지(斷指) 수혈을 하면서까지 극진하게 모셨지만, 마침내 돌아가시자 그 슬퍼하는 모습이 형언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남편마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3년상이 끝나던 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한다. 김인진(金麟鎭) 처 최씨의 경우도 비슷하다. 김인진과 결혼한 후 시부모와 남편을 받들던 최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시부모를 배려하여 애통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남편의 상을 마치고 따라 죽으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수개월이 지나 잠잠해지자 남편의 뒤를 따랐다.

김재룡(金再龍)밀양박씨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는 다른 열녀들의 행동과 차이가 있다. 밀양박씨는 남편과 함께 홍수를 만나 목숨이 위태롭자, 자신의 목숨은 버려도 좋으니 남편의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천지신명께 빌어 남편의 목숨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구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열녀들의 이러한 행위는 성리학적 도덕을 내면화한 결과로서 스스로 도를 실천해 성인이 되고자하는 자아 표현의 일종이라고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한편 열녀가 우리 고유의 풍습도 전통도 아니며, 당시 사회의 문화적 풍토에서 나온 산물이라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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