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이씨
-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대건·이시발·이시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경주이씨(慶州李氏)는 이대건(李大建)[1550~1574]·이시발(李時發)[1569~1626]·이시득(李時得) 3부자가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로 이주하면서 번성하기 시작하여 이하곤(李夏坤)[1677~1724], 이상설(李相卨)[1870~1917] 등 조선 후기의 많은 인물을...
-
삼덕리 상덕마을은 옛날부터 조상 대대로 흉년을 모르고 풍년만을 일구며 의식 걱정을 하지 않고 넉넉한 삶을 이루어 온 곳이다. 또한 언제나, 누구에게나 인심이 후덕하여 마을을 찾는 길손에게는 조반석식을 넉넉히 대접하고, 잠자리도 따스하고 편안하게 대접해서 인심 좋은 마을, 살기 좋은 마을로 널리 소문이 났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마을 앞을 지나는 길손이나 마을을 찾아오는...
-
우리가 구산동마을의 역사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찾아다니는 것을 알고 마을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추천해 준 사람이 임필수 할아버지였다. 임필수 할아버지의 전용 자가용은 커다란 푸른색 트럭인데, 언제나 트럭을 몰고 다니며 마을의 대소사와 집안일을 처리하느라 바쁘시다는 정보도 마을 사람들한테 얻어 들었다. 임필수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농다리전시관 건너편 중리마을로 찾아갔다...
-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마룻바닥을 지면보다 높게 하여 멀리 볼 수 있도록 지어진 누각이나 정자. 누정은 자연을 즐기는 공간인 동시에 자신을 정신 수양하는 장소이다. 이를 ‘누각’, ‘정자’, ‘누대’, ‘정루’ 등이라고도 한다. 누정은 자녀들과 후학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이자 문인들의 토론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누정은 경관이 좋은 곳에 세우거나 또는 누정...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산직리(山直里)의 ‘산(山)’자와 장척리(長尺里)의 ‘척(尺)’자를 따서 산척리(山尺里)라 하였다. 산직은 장자울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경주이씨 산지기가 살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장척은 산직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고려 때 임연(林衍) 장군이 살던 곳이라 한다. 학문과 덕망이 높은 장자(長者)가 덕문이방죽 가운...
-
충청북도 진천군에 세거해 온 유력 성씨. 진천군의 성씨 내력을 알 수 있는 최초의 자료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이다. 진천현의 토성(土姓)으로 한(韓)·임(林)·송(宋)·심(沈)·유(庾)·미(彌)·고(高)·양(梁)·하(河)·장(張) 등 10개 성씨가 있다. 진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성씨조에도 같...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쌍오정의 터. 쌍오정(雙梧亭)은 조선 중기의 문신 경주이씨 이시발(李時發)[1569~1626]의 후손인 이인엽(李寅燁)[1656~1710]이 지은 정자이다. 쌍오정이란 이름은 이인엽의 할아버지인 이시발의 호 벽오(碧梧)와 증조부 이대건(李大建)[1550~1574]의 호 오촌(梧村)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건립된 경주이씨 종가. 용정리 경주이씨 종가는 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다 초평면 용정리 초평삼거리를 지나면 나오는 초평면 내의 중앙부인 초평파출소[구 초평치안센터] 옆에 위치하고 있다. 도로에서 약 30m 정도 떨어져 있다. 경주이씨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지관 두사충(杜師...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있는 경주이씨 세거지. 용정리가 속한 초평면은 조선 말 31개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정면(山井面)의 3개리와 문방면(文方面)의 오경리를 편입하고, 삼티리를 음성군 원남면에 넘겨 모두 5개리로 개편되었다. 그 후 덕산면 오갑리, 문백면 연담리, 청원군 북이면의 4개리를 편입하여 11개리가 되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대건의 신도비. 이대건(李大建)의 본관은 경주로, 고려 후기 유학자로 명성이 드높았던 익재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사마시에 급제하였으나 25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아들이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된 이시발(李時發)이다. 이시발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박춘무(朴春茂)를 따라 공을 세운 데...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후(仲厚). 증조할아버지는 풍천부사를 지낸 이시득(李時得)이며, 할아버지는 승정원좌승지에 추증된 이경회(李慶會)이다.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추증된 이인형(李寅馨)이고,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진사 안여지(安汝止)의 딸이다. 부인으로는 김위(金煒)의 딸인 연안김씨와 진사 신필한(申弼漢)의 딸인 고령신씨(高靈申氏)가 있다. 형으로 이재곤(李載...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후영어은(後潁漁隱). 고조할아버지는 이원(李黿)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발(李渤)이며, 할아버지는 이경윤(李憬胤), 아버지는 진사 오촌(梧村) 이대건(李大建)이다.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도(金燾)의 딸이다. 부인은 여흥민씨이고, 아들로 이분이 있다. 이...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서 이시발과 두사충 사이의 시은과 보은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시발과 두사충의 교분」은 임진왜란 당시 원병으로 온 명나라 장군 이여송(李如松)의 장수 두사충(杜師忠)이 왜군과의 싸움에서 참패를 당해 처형될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준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1569~1626]의 시은담(施恩談)이자, 이에 보답하고자 천혜의...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문백(文伯), 호는 생곡(生谷).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이대건(李大建)이고 할아버지는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이며, 아버지는 지제교(知製敎)·이조판서를 지낸 이경휘(李慶徽)이고, 어머니는 심대복(沈大復)의 딸이다. 큰아버지 이경연(李慶衍)에게 입양되었다. 동생으로 매산(梅山) 이인혁(...
-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중휘(仲輝), 호는 파서(琶西) 또는 구학(臞鶴)이다. 좌의정 이경억(李慶億)의 5대손이고 조부는 이석로(李錫老)이며, 감역 이진원(李進源)의 아들이고 부인은 권세모(權世模)의 딸이다.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태어나 거주하였다. 1774년[영조 50] 식년시를 통해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별시문...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주생활은 전통적인 양식과 구조를 가진 주거 건축 및 전반적인 주생활 행위를 의미한다.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주생활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전통적인 주거 형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진천 지역에 현존하는 주거 형태는 주로 19세기~20세기 초에 지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그 양식은 토담집과 일반적인 주거양식으로 구분된다. 먼저...
-
진천군 용몽리 농요는 진천군 덕산읍 일대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던 노동요로, 2003년 3월 14일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논농사의 차례에 따라 「모 찌는 소리」, 「모심는 소리」, 「논매는 소리」, 「논 뜯는 소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모심을 무렵에 진천군 용몽리 농요보존회[회장 조평희, 1954년생] 회원 80여 명이 마을 앞 논에 직접...
-
충청북도 진천군에 세거하고 있는 유력 성씨들의 촌락. 집성촌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17세기 이후 적장자 중심으로의 상속제도 변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보급, 예학(禮學)의 발달...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매월 2일과 7일에 열렸던 시장. 초평장(草坪場)은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에 있었는데 생곡(生谷)은 마을 형성 당시 경주이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었다. 경주이씨 9대조의 호가 생곡이므로 동명을 생곡이라 하였다. 생곡은 날터로 변하였고 초평장이 서게 되자 다시 장터로 변하였다. 초평장은 초평면 일대의 주민들에게...
-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이론. 풍수라는 말은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다는 뜻의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나온 말이다. 바람을 감춘다는 말[藏風]은 생기가 바람을 만나면 부산(浮散)하므로 그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득수(得水)란 지중에 수기(水氣)가 있으면 생기가 있고, 생기가 축적되면 지상의 복을 가져오니 득수가 필요하다는 뜻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