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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482
한자 龍亭里慶州李氏宗家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 59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장현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통 가옥
양식 민도리집
건립시기/일시 17세기
정면칸수 5칸
측면칸수 1.5칸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 591 지도보기
소유자 엄기성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건립된 경주이씨 종가.

[위치]

용정리 경주이씨 종가진천읍에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다 초평면 용정리 초평삼거리를 지나면 나오는 초평면 내의 중앙부인 초평파출소[구 초평치안센터] 옆에 위치하고 있다. 도로에서 약 30m 정도 떨어져 있다.

[변천]

경주이씨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지관 두사충(杜師忠)이 진(陣)을 잘못 쳐서 명군이 왜군에 패하게 되자 그 책임을 물어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는데, 이시발(李時発)[1569~1626]이 건의하여 목숨을 구하였다고 한다. 이에 두사충이 은혜를 갚기 위해 이 집터를 잡아주었다고 하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 집터의 기를 누르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고 전해진다.

이 가옥이 위치한 곳은 17세기 경주이씨 종가가 있던 곳으로 본래의 가옥은 ㄱ자 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배치된 튼ㅁ자형의 배치 구성이었다고 한다. 용정리 경주이씨 종가는 90여 년 전 다른 사람에게 매매되었으며, 30여 년 전에 개축하면서 많이 축소되고 변형되었다.

[형태]

현재 용정리 경주이씨 종가는 일자형의 평면 구성으로 서쪽에서부터 방·부엌·방·방 등으로 이루어진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이다. 높다란 자연석 기단 위에 방형으로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 주초석(柱礎石)을 놓고 방형으로 다듬은 각주를 세웠는데, 기둥의 상태로 보아 개축 당시 부속 건물의 기둥을 옮겨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붕 가구는 1고주 5량가이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전면 툇간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뒤쪽에는 굴뚝이 설치되어 있다. 서쪽에 있는 방 부분이 원래는 부엌이었다고 한다. 배면 기둥에 남아 있는 장부 구멍이나 부재의 치목 상태 등을 보아 여러 가지 옛날 재료가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2009년 현재 가옥의 외형은 양호하나 내부 상태는 생활의 편의를 위해 많은 부분 변형되어 있다. 내부 공간은 물건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옛 집터에 있던 축사는 현재 비어 있다. 한편 창고 자리에는 현대식 주택을 건축하여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다. 소유자인 엄기성이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용정리 경주이씨 종가는 17세기에 건립된 경주이씨 종가가 있던 집터로서 의미가 있으며, 현 건물의 부재로 용정리 경주이씨 종가의 것을 재사용함으로써 전통적인 건축 기법과 형식이 남아 있어 건축적인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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