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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577
한자 慶州李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초평면 용기리|초평면 영구리 어은마을|백곡면 석현리|진천읍 송두리|덕산읍 신척리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지도보기
집성촌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입향시기/연도 조선 전기
성씨시조 이알평
입향시조 이대건|이시발|이시득

[정의]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대건·이시발·이시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개설]

경주이씨(慶州李氏)이대건(李大建)[1550~1574]·이시발(李時發)[1569~1626]·이시득(李時得) 3부자가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로 이주하면서 번성하기 시작하여 이하곤(李夏坤)[1677~1724], 이상설(李相卨)[1870~1917] 등 조선 후기의 많은 인물을 배출한 진천의 대표적인 세거 성씨이다.

[연원]

경주이씨는 신라의 6촌 중 양산촌(楊山村)의 촌장인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삼고, 신라 진골(眞骨) 출신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 본관 발상지인 양산촌이 뒤에 경주로 바뀌었기 때문에 경주라고 했으며, 경주의 옛 이름이 월성(月城)인 까닭에 월성이씨(月城李氏)라고도 한다.

경주이씨는 고려 후기에 크게 세력을 떨쳤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상신 8명, 대제학 3명, 호당 3명, 청백리 3명, 공신 11명, 장신 3명을 비롯하여 문과 급제자 178명을 배출하여 명문거족으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상서공파(尙書公派)의 문충공(文忠公) 이항복(李恒福)[1556~1618]과 국당공파(菊堂公派) 이천(李蒨), 선조 때의 이름난 무신 충무공(忠武公) 이수일(李守一)[1554~1632] 등이 유명하다.

[입향경위]

고려시대 명재상이며 대학자인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후손인 이대건과 그의 아들 이시발, 이시득 3부자가 조선 명종 조에 제천에서 청주 오근장으로 이거하였다가 다시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로 옮겨온 이래 400년 동안 세거하면서 많은 문무 현관을 배출하였다.

[현황]

입향조 이대건의 증조는 무오사화 때 화를 당한 재사당(再思堂) 이원(李黿), 조부는 두곡(杜谷) 이발(李渤), 부친은 이경윤(李憬胤)이다. 이대건은 차남으로 제천에서 출생하였다. 학문이 뛰어나 송천서원(松泉書院)에 배향되었고, 의정부좌찬성에 증직되었다. 묘소는 초평면 용정리 저전에 있다.

경주이씨는 2000년 인구 조사에 의하면 진천에 916가구 2,60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경주이씨 세거지는 초평면 용기리영구리에 집약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 591경주이씨 종가가 있던 집터로 이 마을은 경주이씨가 주성을 이루고 타성이 함께 거주하는 혼성마을이다

[관련유적]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경주이씨 묘역에 이대건, 이시발 등의 묘소와 신도비가 있고, 양촌마을에는 조선시대 대표적 서고인 완위각 터가 남아 있으며, 진천읍 산척리진천 이상설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생곡 591에는 경주이씨 종가 터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4.16 내용 수정 [관련유적] 용전리 → 용정리
이용자 의견
조범희 [관련유적]에서 초평면 용전리는 초평면 용정리의 오타로 수정이 필요합니다.
  • 답변
  • 디지털진천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내용에 대하여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의견 개진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