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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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南花源面靑瓷窯址 |
영어공식명칭 | Haenam Hwawonmyeon Cheongja Kiln Sit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신덕리 산102 외|금평리 428-1외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변남주 |
건립 시기/일시 | 고려시대 - 해남화원면청자요지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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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0년 - 해남화원면청자요지 국립광주박물관이 지표조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 해남화원면청자요지 가마터 15개소 확인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2년 - 해남화원면청자요지 목포대학교박물관이 지표조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2년 - 해남화원면청자요지 가마터 41개소 확인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4년 2월 13일 - 해남화원면청자요지 전라남도 기념물 제220호로 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7년 8월 - 해남화원면청자요지 발굴 조사 실시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17년 - 해남화원면청자요지 초기 진흙 가마 확인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해남화원면청자요지 전라남도 기념물로 재지정 |
소재지 | 해남화원면청자요지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신덕리 산102 외|금평리 428-1외 |
성격 | 청자 요지 |
지정 면적 | 55,178㎡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해남군수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남도 기념물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신덕리 뱀골과 금평리 절골에 있는 초기 청자 가마터.
[개설]
해남화원면청자요지(海南花源面靑瓷窯址)는 국내 유일의 초기 청자를 생산한 대규모 단지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영암 구림리 도기가마 등 전통 기술을 바탕으로 새롭게 중국 청자 기술을 도입하여 생산한 대규모 가마터임을 알려 주고 있다. 가마의 대부분은 고려 초기에 운영되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내 자기 발생의 단서와 초기 청자의 기형 변화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해남화원면청자요지는 서남해안의 모서리에 해당하는 화원 반도에 있어 한반도 육지부의 끝에 해당하는 곳이다. 육로로는 변방이지만 중국, 서해, 남해로 통하는 해상 물길과 영산강으로 통하는 강상 물길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어 뱃길로는 최고의 요충지이다. 그러므로 청자 산업 발달에서 기본이 되는 태토, 물, 화목의 요소보다 뱃길을 통하여 제자 기술 유입과 소비처로 청자 운송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변천]
청자는 품종과 기종 그리고 굽는 법에서 중국적 요소와 전통적인 요소로 양분된다. 품종 기종에서 중국적 요소는 소형 식기인 완, 발, 접시류, 잔, 타호, 뚜겅 등을 말하며 전통적인 요소는 흑자와 도기에서 주로 나타나며 광구형에 편병, 나팔형 편호, 주판알형 유병 등을 말한다. 굽는 법에서 중국적 요소는 부드러운 백색내화토, 갑발, 갑발받침 등이고, 전통적인 요소는 흙가마, 내화토로 조개껍질 사용 등이다. 전통적 요소의 유래는 영암 구림도기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남화원면청자요지에는 영암의 구림도기 전통적인 요소에 중국의 청자 제자(製磁) 기술이 유입되어 운영되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위치]
해남화원면청자요지는 해남군 화원면 신덕리 산102 외, 금평리 428-1 외 일원에 있다. 신덕리에 있는 청자 가마터는 신덕저수지를 중심으로 국도 양쪽의 구릉과 골짜기, 경작지 등에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다. 금평리에 있는 청자 가마터는 절골마을 입구, 절골마을에서 북쪽으로 100m 지점과 금평면 사동마을 위쪽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해남화원면청자요지는 2017년 8월 발굴 조사에서는 완벽한 상태의 초기 진흙 가마가 확인되었다. 규모는 길이 10m, 너비 1.3~1.6m 가량의 진흙으로 만든 반지하식의 단실 오름 가마 형태로 발견되었다. 진흙 가마는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남서부에 분포하고 있으며, 당시 중국의 직접적인 기술을 받아들여 만든 중서부 지역 길이 40m의 벽돌 가마와 대비되는 구조이다. 진흙 가마는 벽돌 가마와 달리 전통의 구림도기 가마를 계승해 만든 가마로 연소실에 불턱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흙가마에서는 청자를 중심으로 흑자와 도기가 함께 확인되고 있으며, 청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우수한 형태의 완을 비롯해 발과 접시, 병, 호, 등 일상 생활용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현황]
해남화원면청자요지는 1998년 6월 초 한 등산인[목포 용당동 거주 김양원, 1968년생]이 50여 점의 청자·흑자편을 수습하여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이후 개인 연구자[국민대학교 연구교수 변남주]가 5년 동안에 걸쳐 화원면 신덕리와 금평리 20여 산골짜기에서 60여 초기 청자 가마터를 발견하였다. 공식적으로 2000년 국립광주박물관과 2002년 목포대학교박물관 지표조사가 실시되어 보고서로 발간되었다. 2000년 지표조사에서는 15개소, 이후 조사에서 41개소가 추가되고, 이후에도 2개소가 더 발견되었다. 이후 지표조사 결과 80~90여 기 개별 가마가 분포한 국내 유일의 초기 청자 대규모 가마터로 확인되었다. 한편 해남화원면청자요지는 2004년 2월 13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22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해남화원면청자요지는 크기 5만 5178㎡[93필지]의 국유지에 자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한국은 중국과 더불어 청자를 생산한 유일한 국가이다. 해남화원면청자요지는 대규모 가마터가 집단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국내 유일한 유적이다. 한국 청자 발생의 단서와 초기 청자의 기형 변화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