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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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陶窯址 |
영어공식명칭 | Kiln Site |
이칭/별칭 | 가마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신덕리|산이면 진산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희태 |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진산1길 24[진산리 136] 외 | |
해남화원면청자요지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신덕리 산102|금평리 428-1 일원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과 화원면 일원에 분포하는 고려시대 도자기 가마터.
[개설]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는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와 해남 화원면 청자 요지가 있다.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는 원래 바다와 접해 있는 길게 뻗은 반도 형태로 바닷가 낮은 구릉 지대에 100여 기의 가마터가 분포한다. 현재는 영산강 개발 사업으로 개간되어 유적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 출토 유물은 대량의 철화청자를 비롯한 청자와 경질도기, 연질도기 등의 도자기류와 갑발과 도지미 등의 요도구들이다. 산이면에서 생산된 청자는 1984년 완도 어두리 앞바다에서 3만여 점, 2003년 군산 십이동파도 인근에서 8,000여 점이 인양되었다. 당시 청자는 관청과 지방 등의 수요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남 화원면 청자 요지는 국내 유일의 초기 청자 대규모 단지이다. 신덕리 초기 청자는 우리나라 전통 영암구림도기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새롭게 중국 청자 기술을 도입하여 생산한 대규모 가마터임을 알려 주고 있다. 가마의 대부분은 고려 초기에 운영되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내 자기 발생의 단서와 초기 청자의 기형 변화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해남 화원면 청자 요지는 육로로는 변방이지만 중국, 서해, 남해로 통하는 해상물길과 영산강으로 통하는 강상물길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어 뱃길로는 최고의 요충지이다. 그러므로 청자 산업 발달에서 기본이 되는 태토, 물, 화목의 요소보다 뱃길을 통하여 제자 기술 유입과 소비처로 청자 운송이 이루어지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발굴 과정과 도요지 현황]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는 1985년 1월 4일 사적 제310호로 지정되었다. 해남 지역 요지 조사는 1986년 목포대학교박물관[『해남군의 문화유적』]과 국립광주박물관[『전남지방 도요지 조사보고』]에서 실시하였다. 조사의 기초 자료는 도예가 고현 조기정이 제공하였다. 1987년 목포대학교 박물관에서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에 대한 정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기정이 책임연구원으로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기정은 지표조사 보고서와 함께 『녹청자소고』를 발표하였다. 1987년과 1992년에는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2년 해남 청자 요지 조사를 하고, 조사를 토대로 2004년 해남 화원면 신덕리와 금평리에 분포한 청자 요지가 2004년 2월 13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220호로 지정되었다. 2017년과 2018년에도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와 해남 화원면 청자 요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해남의 청자 가마터는 산이면의 경우 구성리 2기와 진산리 80기, 초송리 24기 등 모두 106기가 확인되었으며, 화원면에서는 61곳의 초기 청자요지가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강진 대구면 일대의 청자 가마터 강진 고려청자 요지[사적 제68호]에 버금가는 대규모 집단 가마로 한국 도자사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해남 진산리 청자 요지는 1985년 1월 4일 사적 제310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앞으로의 과제]
해남 지역 요지 가운데 산이면 진산리, 초송리, 구성리와 화원면 신덕리, 금평리는 고려 초기 청자 요지가 집중 분포되어 있어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지역과 함께 우리나라 도자사 연구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유적이다. 산이면 지역은 보호 관리를 더 체계적으로 하여야 하고 화원면 지역은 학술 조사 자료를 토대로 국가 차원에서 보존 관리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