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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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門內面 |
영어공식명칭 | Munnae-mye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병삼 |
개설 시기/일시 | 2014년 04월 01일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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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내면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 |
성격 | 법정면 |
면적 | 56.558㎢ |
가구수 | 4,282가구 |
인구[남/여] | 8,377명[남자 4,155명|여자 4,222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에 속하는 법정면.
[명칭 유래]
황일면(黃一面)과 황이면(黃二面)이 1897년 합쳐져서 문내면(門內面)이 되었다. 문내면에는 조선시대 초부터 전라우수영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전라우수영 영문(營門)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호구총수』(1789)에 의하면 문내면(門內面)은 조선시대의 황일면(黃一面)과 황이면(黃二面)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1897년 황일면과 황이면이 합쳐져서 문내면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해남군 문내면으로 개설되었다. 2018년 현재 문내면은 12개 법정리와 46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문내면은 본래 백제 때 황술현, 통일신라 때 황원현, 고려 때 황원군에 속한 지역이다. 그 영역은 지금의 화원면과 문내면, 그리고 황산면 일부 지역을 포함한 지역이다. 변천 과정을 보면, 백제 때에는 황술현(黃述縣)이라 부르고, 도무군에 속하였다. 통일신라 때에는 757년(경덕왕 16)에 황원현(黃原縣)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양무군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에는 황원군으로 승격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황원현으로 격하되어 영암군에 속하게 된다. 조선 초에 황원현에 수영과 목장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그 소속이 영암에서 해남으로 넘어왔다. 먼저 전라우수영 설치 과정을 보면, 1432년(세종 14), 무안 대굴포(對掘浦)에 있던 처치사영(處置使營)을 지금의 목포로 옮기고, 병선들을 황원의 주량(周梁)[해남 우수영]으로 옮겼다. 1433년부터 본영을 황원으로 옮긴 가운데, 1439년 목포에 만호진을 개설하고, 1440년(세종 22) 본영을 완전히 주량, 지금의 우수영으로 옮겼다. 주량의 전라수영이 전라우도수군절도사영(全羅右道水軍節度使營)으로 된 것은 1479년(성종 10)이다. 전라도 서남해안이 너무 넓어 취해진 이 조처로 지금의 여수에 또 하나의 수영을 개설하여 좌수영(左水營)이라 하였다. 1445년(세종 27) 지금의 화원 지역에 황원곶 목장을 설치하면서 1448년(세종 30)에 영암군의 소속이던 황원현이 해남현으로 편입된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고적 조에 황원이 폐현된 것으로 보아 16세기 이전에 황원현이 없어지고 임진왜란 이후 면리제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문내 지역의 면리제는 『여지도서(輿地圖書)』[1757~1765]에 황일면과 황이면이 처음 나온다. 당시 황일면은 총 1661호, 인구 4,810명[남 2,171명, 여 2,639명], 황이면은 총 419호, 인구 1,016명[남 412명, 여 604명]이 살았다.
『여지도서』보다 30년 후에 발간된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마을 이름까지 나온다. 『호구총수』에 기재된 마을별 현황을 보면, 황일면은 30개 마을에 총 1,371호, 3,895명[남자 1,506명, 여자 2,389명], 황이면은 10개 마을에 총 407호, 1,152명[남자 526명, 여자 626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었다. 황일면의 경우, 호구수에서 290호, 인구수에서 900여 명이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문내라는 이름이 처음 보인 것은 우수영이 혁파된 1895년(고종 32)으로, 그 이전에는 황일면과 황이면의 일부에 포함되어 있었다. 같은 해에 해남현이 해남군으로 개편되면서 문내면으로 편입된 마을은 34개였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장서면의 방하리 등 12개 마을을 더해 모두 46개 마을이 문내면에 편입되었다. 이때 12개의 법정리가 만들어졌는데 마을 이름은 한 마을의 이름을 대표로 내세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자연마을에는 우수영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용암리(龍岩里)의 원동(院洞)·원문(元門)마을은 우수영과 원문에 기원을 두고 있다. 동외리(東外里)의 동외(東外)·동영(東營)·동내(東內)·남외(南外)마을은 동문밖·우수영·동문안·남문안의 한자식 표기이며, 우수영과의 위치 관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선두리(先頭里)의 남상(南上)마을은 남문 안에 있던 바닷쪽 마을에서, 남하(南下)마을은 바다에서 떨어진 안쪽에 있던 마을에서 각각 기원한 지명이다. 무고리(武古里)는 우수영 병사들이 무술을 연마하였던 곳이다. 『조선지지자료』[해남]에 무고주막(武古酒幕)이 기록되어 있다. 1914년 문내면의 행정구역 개편 현황은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1917]에 자세히 나와 있다.
[자연환경]
문내면은 좁은 반도 지형에 구릉지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산이 높지 않고, 하천이 발달되지 않았다. 이 지역의 산은 호암산[136.9m], 서승산[108.5m], 망해산[78.4m], 대덕산[85m], 청룡산[74.8m] 등 해발 100m 내외이다. 기후는 대체적으로 다습하나 해마다 가뭄이 심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85년 착공하여, 1996년 준공된 금호방조제로 담수호인 금호호가 들어섰고, 호수 주변 개벌에 대한 대대적인 간척사업으로 면의 동쪽에 넓은 농경지가 만들어졌다. 농업용수는 마을 곳곳에 조성된 저수지와 금호호 물을 이용하고 있다.
[현황]
해남읍에서 서쪽으로 30㎞ 지점에 있는 문내면은 동쪽으로 황산면, 북쪽으로 화원면과 인접하여 있으며, 남서쪽으로 이순신 장군의 대첩지인 명량해협[울돌목]을 사이에 두고 진도군, 동북쪽으로 금호호를 사이에 두고 산이면과 마주보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문내면의 총면적은 56.558㎢이며, 난대리, 용암리, 동외리, 석교리, 선두리, 고평리, 서상리, 예락리, 무고리, 충평리, 고당리, 학동리 등 12개 법정리와 46개 행정마을에 4,282세대, 8,377명[남 4,155명, 여 4,22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산물은 쌀, 배추, 양파를 재배하고 있으며, 특산물은 김, 참다래를 생산하고 있다. 관내 주요 기관은 해남군수협 우수영지점, 우수영우체국, 문내새마을금고, 문내농협, 문내119지역대, 전남해남경찰서 문내파출소, 우수영초등학교, 우수영중학교 등이 있다. 교통은 황산면에서 넘어온 국도 제18호선과 진도에서 화원으로 관통하는 국도 제77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문내면소재지에서 시작된 지방도 제803호선이 서쪽 해안가를 따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군도 제22호선과 제33호선이 면의 동쪽에서 교차하고 있으며, 황산면에서 시작된 군도 제20호선과 제24호선이 문내면의 남쪽을 지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해남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 1969년 6월 16일 지정], 강강술래[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1966년 2월 15일], 해남 전라우수영[사적 제535호, 2016년 9월 30일 지정], 우수영부녀농요[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 1987년 8월 25일 지정] 등이 있다. 명량대첩지인 명량해협[울돌목]에는 우수영과 진도를 잇는 연륙교 진도대교가 있다. 문내면 우수영 일원인 서상리·동외리·선두리에는 2015·2016 마을 미술 프로젝트 선정되어 조성된 우수영문화마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