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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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은 한양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가사 문학의 대가로 국문학 사상 중요한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성산별곡(星山別曲)」 등의 가사 작품과 시조를 남겼다. 문집으로는 『송강집(松江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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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을 시조로 하고, 김사혁과 김천익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강릉김씨(江陵金氏)의 시조 김주원(金周元)은 통일신라시대 선덕왕(宣德王) 시기에 시중(侍中)을 지낸 인물이다. 진천의 강릉김씨는 고려말과 조선초의 무신 김사혁(金斯革)[1320~1385]과 그의 아들 김천익(金天益)을 입향조로 한다. 시조 김주원은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의 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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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금석문. 조선 후기 명신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1646~1715]은 남구만(南九萬)과 박세채(朴世采)의 학문을 이었으며, 현종·숙종 대에 고위 관료로 활동하였다. 만년에 낙향하여 금곡에 태극정(太極亭)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금곡리 옥천병자(琴谷里玉川屛字)는 그와 관련된 유적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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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서 허적의 별장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금천 전설」은 허적(許積)[1610~1680]이 별장을 지을 때 우물을 파면서 다른 우물들처럼 돌로 만들지 않고 쇠[金]를 이용하였다고 붙여진 지명유래담이다. 금천(金泉)은 당시에 귀했던 쇠를 사용해서 우물을 만들었으니 호화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의미를 담고 있다. 1994년 진천군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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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염을 시조로 하고, 허속·허기 형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시조 허염(許琰)은 수로왕비인 보주태후(普州太后) 35세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 문종 때 태어나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르고 가락군(駕洛君)에 봉해졌다. 김해허씨(金海許氏)는 허씨 중에서 종통(宗統)으로, 가락이 신라에 의해 망함으로써 왕손들이 각 지방에 유리되었으나 종파는 김해에 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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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필정의 신도비. 박필정(朴弼正)[1684~1756]은 숙종·영조 대에 걸쳐 활동한 문신으로,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자는 계심(季心)이며, 호는 일휴(逸休)라 하였다. 28세에 명경과에 급제한 이후 성균관 전적 병조정랑 사간원 지평 한성부좌윤 등을 거쳐 가선대부에 올랐다가 1756년(영조 32)에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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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에 세거해 온 유력 성씨. 진천군의 성씨 내력을 알 수 있는 최초의 자료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이다. 진천현의 토성(土姓)으로 한(韓)·임(林)·송(宋)·심(沈)·유(庾)·미(彌)·고(高)·양(梁)·하(河)·장(張) 등 10개 성씨가 있다. 진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성씨조에도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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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진천(鎭川). 송인(宋仁)의 17세손이며, 송광보(宋匡補)의 10세손이다. 송재태(宋載泰)는 숙종이 죽음에 임박하여 병약한 경종의 왕위가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하여 노론의 영수 이이명과 독대하여 연잉군[훗날 영조]을 세제에 책봉되도록 하였다. 경종이 승하하자 영조가 노론의 뒷받침으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 소론은 정치적 주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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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제형이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쌍오정에 올라 주변의 경관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쌍오정(雙梧亭)은 조선 후기 문신 회와(晦窩) 이인엽(李寅燁)[1656~1710]이 벼슬길을 버리고 초평으로 낙향하여 지은 정자로,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이인엽은 이시발(李時發)의 손자로, 숙종이 중전 민씨를 폐하려 하자 재야 서인 인사들과 더불어 반대소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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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양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쌍오정의 터. 쌍오정(雙梧亭)은 조선 중기의 문신 경주이씨 이시발(李時發)[1569~1626]의 후손인 이인엽(李寅燁)[1656~1710]이 지은 정자이다. 쌍오정이란 이름은 이인엽의 할아버지인 이시발의 호 벽오(碧梧)와 증조부 이대건(李大建)[1550~1574]의 호 오촌(梧村)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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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팔급을 도시조로 하고 임우를 중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도시조 임팔급(林八及)은 당나라에서 용도각한림학사·행병부상서를 지내다가 참소를 당하자 동료들과 함께 신라로 망명하여 평택현 용포리에 정착하였다. 적병이 침범하자 의병을 일으켜 이를 격파하였고, 그 공으로 평택군(平澤君)에 봉해졌다. 중시조 임우(林祐)는 부안임씨(扶安林氏)의 1대조 임계미(林季美)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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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서 증평 방향으로 국도 34호선을 따라가다 초평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꺾어 내려가면 지전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지전교 방향으로 가서 다리를 건너면 양촌마을 입구가 나온다. 이상린 가옥은 이 양촌마을의 중심부 경사지에 위치한다. 이상린 가옥이 언제 처음으로 건립되었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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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작을 시조로 하고, 최유경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전주최씨(全州崔氏)는 계보를 달리하는 4파로 갈라져 있는데, 완산부개국백(完山府開國伯)에 봉해진 최순작(崔純爵)을 시조로 하는 문열공파(文烈公派), 완산군(完山君)에 추봉된 최균(崔均)을 시조로 하는 사도공파(司徒公派), 완산군 최아(崔阿)를 시조로 하는 문성공파(文成公派), 완산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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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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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지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지명설화는 설명적 전설에 해당되는 지명유래 전설과 역사적 전설에 해당하는 지명 전설이 있다. 설명적 전설인 지명유래 전설은 자연물이나 인공물의 특수한 형상이나 특징으로 인하여 암석·교량·산악·못 등이 명명된 내력을 설명하는 설화이며, 여기에 수록된 각 편 가운데 17편으로 가장 많다. 지명설화에는 「살구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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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이영남의 묘소. 이영남(李英南)[1547~1598]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사수(士秀)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1584년(선조 17)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옥포만호로서 원균(元均)을 도와 전라좌수사로 있던 이순신에게 왕래하며 군사를 요청하는 등 여러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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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유을 시조로 하고, 김익구와 김준흠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청풍김씨(淸風金氏) 시조 김대유(金大猷)는 신라 56대 경순왕 김부(金傅)의 후예인 대장군 김순웅(金順雄)의 12세손으로, 고려 말엽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청성(淸城)이 청풍(淸風)으로 개칭됨에 따라 후손들이 본관을 청풍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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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석만(錫萬), 자는 여시(汝時)·여화(汝和), 호는 존와(存窩)·명곡(明谷). 증조할아버지는 최기남(崔起南)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최명길(崔鳴吉)이며, 아버지는 한성좌윤 완릉군(完陵君) 최후량(崔後亮)이다. 어머니는 안헌징(安獻徵)의 딸이다. 응교(應敎) 최후상(崔後尙)에게 입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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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할아버지는 최기(崔基)이다. 최주민(崔柱旻)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작은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모셨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종기를 입으로 빨아내어 완쾌하게 하였고, 손수 약맛을 보아 봉양하였다. 숙종(肅宗) 때 정려가 내려졌다. 최주민의 할아버지 최기, 고조할아버지 최덕순, 증조할아버지 최사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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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잡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고려의 개국 공신 신숭겸(申崇謙)[? ~927]을 시조로 하고, 충헌공(忠憲公) 신잡(申磼)[1541~1609]이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로 낙향하면서 세거하기 시작한 충청북도 진천군의 대표적인 세거 성씨이다. 진천군에는 충헌공 후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그의 후손이 진천뿐만 아니라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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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경을 시조로 하고 홍양호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풍산홍씨(豊山洪氏) 시조 홍지경(洪之慶)은 1242년(고종 29)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국학직학(國學直學)을 지낸 뒤 풍산(豊山)에 정착하였다. 이에 후손들이 풍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들어 풍산홍씨는 왕비 1명, 상신(相臣) 5명, 대제학 3명, 공신 1명, 장신(將臣)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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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에 활동 흔적이 남아 있는 조선 후기의 고위 문신. 조선후기 현종·숙종 대 온건파 남인세력인 탁남(濁南)의 영수로 활약한 고위 문신이다.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자는 여차(汝車)이고, 호는 묵재(默齋)·휴옹(休翁)이다. 허초(許礎)의 증손으로 조부는 허잠(許潛)이고, 아버지는 부사 허한(許僩)이다. 24세인 1633년(인조 11) 생원·진사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