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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553
한자 淸風金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이월면 내촌리 근어마을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 지도보기|백곡면 사송리지도보기
집성촌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백곡면 사송리
입향시기/연도 조선 후기
성씨시조 김대유
입향시조 김익구|김준흠

[정의]

김대유을 시조로 하고, 김익구와 김준흠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연원]

청풍김씨(淸風金氏) 시조 김대유(金大猷)는 신라 56대 경순왕 김부(金傅)의 후예인 대장군 김순웅(金順雄)의 12세손으로, 고려 말엽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청성부원군(淸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청성(淸城)이 청풍(淸風)으로 개칭됨에 따라 후손들이 본관을 청풍으로 하였다. 청풍김씨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왕비 2명, 상신 8명, 대제학 3명, 호당 2명, 청백리 1명, 공신 7명, 장신 7명, 문과 급제자 110명을 배출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인 숙종·영조·정조 대를 중심으로 왕비와 상신 및 대제학, 장신 등이 모두 당쟁에 관여했던 인물들이었음을 감안할 때 가문의 성쇠는 당쟁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풍김씨를 명문세족으로 중흥시킨 인물로는 효종 때 영의정 김육(金堉)현종 때 전라도관찰사 김징(金澄)을 들 수 있다. 김징의 자손 가운데 김구(金構)숙종 때 우의정, 김구의 아들 김재로(金在魯)영조 때 영의정, 김재로의 아들 김치인(金致仁)이 정조 때 영의정을 지냄에 따라 3대 정승을 배출한 가문으로 유명하다. 한편 김육의 자손에서는 김육효종 때 영의정, 그의 손자 김석주(金錫冑)가 숙종 때 대제학과 우의정을 지냈으며, 김육의 딸이 현종비로 간택되었고, 김시묵(金時黙)의 딸이 정조비로 간택되었다. 한편 근세 인물 중 유명한 청풍김씨로는 김윤식(金允植)과 김규식(金奎植)이 있다.

[입향경위]

광해군이이첨(李爾瞻)을 참하라는 상소를 올렸다가 퇴출당한 김익구(金益久)진천군 문백면 도하리 도장마을로 이주한 것이 청풍김씨가 진천 지역에 세거(世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김준흠(金駿欽)이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 상송(上松)마을로 내주(來住)하여 150여 년 세거하고 있다.

[현황]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진천군 관내에 거주하는 청풍김씨는 71가구 219명으로 나타났다. 현재 청풍김씨 30여 가구가 대성을 이루는 백곡면 사송리 상송마을은 옛날에는 송정(松亭)이라 불렀다 한다. 윗마을에 위치한다고 하여 ‘상송’이라 불렀다 하는데, 동네에서 상송을 바라볼 때 울창한 소나무 사이에 동네가 있어 상송이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인의족보편찬위원회, 『한국인의 족보』(중앙교육자료개발원, 1995)
  • 진천군청(http://www.jincheo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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