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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내촌리 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530
한자 鎭川內村里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내촌리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박중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적|주거지|분묘
건립시기/연도 고려시대~조선시대
면적 3,300㎡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내촌리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내촌리에 위치한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의 주거 및 분묘 유적지.

[개설]

내촌리 유적(內村里 遺蹟)은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 안성-음성 간 8공구 고속도로 공사 문화재 발굴조사의 일환으로 2005년 4월 11일부터 7월 9일까지 발굴조사에서 발견되었다. 조사 지역은 충청북도 음성군 미곡리, 진천군 미잠리·내촌리 지역이다. 발굴조사 결과 내촌리 유적에서는 조선시대 주거지 8기, 고려시대 이후 토광묘 7기가 조사되었으며, 유물은 백자대접을 비롯하여 23여 점이 출토되었다.

[위치]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내촌리 일대로 면적은 3,300㎡이다. 조사 지역은 해발 87~98m의 구릉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북쪽으로는 밭이 경작되고 남쪽으로는 논이 경작되고 있다.

[현황]

내촌리 유적의 주거지는 모두 8기이다. 주거지는 모두 반지하식이며, 중복된 경우는 1, 2호 주거지가 있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7호, 8호 주거지가 원형이며, 나머지는 모두 장방형으로 판단된다. 주거지의 장축은 7호, 8호 주거지를 제외하고 동-서 방향이다. 주거지 내부 시설로 아궁이 시설이 확인된다. 아궁이는 주거지에 따라 2형식으로 분류 가능하다.

유물은 분청사기·백자사발 등이 출토되었는데, 분청사기는 귀갑문·연판문이 시문되거나 점열문이 있으며, 백자는 대마디굽에 태토빚음받침 등이 확인된다. 따라서 내촌리 유적에서 확인된 주거지는 자기류의 출토 양상을 미루어보면 대개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전반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토광묘[널무덤]는 7기가 조사되었는데, 토광묘는 내부 형태에 따라 3가지 형식으로 분류된다. 1식은 묘광이 축소된 형식, 2식은 보강토를 사용한 형식, 3식은 아무런 시설 없이 사용한 형식으로 분류된다. 1식은 1, 4, 6호 토광묘가 해당한다. 토광묘에서 요갱시설 및 벽감시설, 주혈시설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출토된 유물이 없어 토광묘의 시기를 설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토광묘의 구조가 단순하며, 과거 조사된 예와 비교해 보면 고려시대 이후 조영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내촌리 유적은 발굴조사로 인하여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가 확인되어 당시 음성·진천 지역의 문화상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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