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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532
한자 鎭川葛月里遺蹟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산 29-1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조선/조선
집필자 박중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가마|유적
건립시기/연도 통일신라시대~조선시대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산 29-1 지도보기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의 가마 유적.

[개설]

갈월리 유적(葛月里 遺蹟)은 대중골프장 건설과 관련하여 해당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유적이다. 발굴조사 결과 2지점에서 조선시대 숯가마 1기 및 소성유구 2기, 8지점에서 통일신라 기와가마 1기 등 총 4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위치]

진천군 진천읍에서 백곡면을 지나 국도 34호선을 따라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 도림리로 오가는 고개인 엽둔재 쪽으로 약 6㎞ 정도 가면 백곡면 갈월리 상로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유적은 상로마을 북쪽에 인접하여 있으며, 비교적 험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형태]

숯가마 탄화실은 평면 형태가 역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크기는 길이 267㎝, 최대너비 202㎝이다. 탄화실의 바닥면 중앙부에는 굴뚝부터 점화부 외측까지 이어지는 길이 302㎝, 너비 13㎝의 얕은 홈이 파여 있다. 굴뚝은 탄화실의 안쪽 벽 중앙부를 굴착하여 홈을 낸 뒤 탄화실 안쪽 벽면에 맞추어 할석과 점토를 이용하여 벽을 만들었으며, 굴뚝 하단부가 탄화실 바닥면보다 깊게 구덩식으로 굴착되어 있다. 굴뚝 아래쪽에 조성된 구덩이는 목초액을 채취하기 위한 시설로 보이며, 이는 탄화실의 바닥면에 형성된 굴뚝과 연결된 홈이 굴뚝 쪽으로 경사진 것으로 보아 홈을 통하여 목초액이 굴뚝 밑에 조성된 구덩으로 모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성유구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다. 내부 양상은 1호의 경우 바닥면 중앙부가 붉게 소결되었으며, 바닥면에 10㎝ 두께로 숯이 채워져 있었다. 유구의 규모는 1호의 경우 길이 275㎝, 최대너비 112㎝, 깊이 27㎝이며, 2호는 길이 217㎝, 최대너비 84㎝, 깊이 27㎝이다. 기와가마의 화구부는 평면 형태가 원형에 가깝고, 전체적으로 열을 받아 붉게 소결되었다. 화구부의 잔존 규모는 길이 105㎝, 너비 111㎝이다.

[현황]

숯가마는 해발 260m 높이의 산사면에 땅을 굴착하여 반지하식으로 조성되었으며, 가마의 크기는 길이 370㎝, 최대너비 202㎝, 깊이 50㎝이다. 숫가마의 구조는 탄화실·점화부·굴뚝으로 구분되는데, 삭평으로 인해 탄화실 천정부와 사면 아래쪽에 위치한 점화부가 유실되어 전체적인 구조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숯가마의 사용 시기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지만, 대체로 18세기 이후로 판단된다.

소성유구는 숯가마에서 사면 아래쪽인 서남쪽으로 5m 정도 떨어진 해발 258~259m 높이에 위치하고 있다. 출토유물은 없으며, 숯가마의 부속시설로 추정된다. 기와가마는 해발 193~194m 높이에 생토인 적갈색 풍화암반토를 굴착하고 조성되었다. 잔존 상태는 교란이 심하여 화구부와 회구부의 일부만이 남아 있는 정도이다. 유물로 암키와 4점이 출토되었는데, 회색 혹은 회청색의 경질이며, 등면에는 격자문이 타날되었고, 배면은 사절흔과 포목흔이 확인된다. 유물과 연대측정 자료로 보아 AD 8~9세기에 사용된 가마로 여겨진다.

[의의와 평가]

갈월리 유적에서 확인된 유구 수는 비록 적지만, 지금까지 진천 지역에서 이와 같은 숯가마와 기와가마가 확인된 예가 드문 상황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진천 지역의 숯과 기와의 생산과 유통, 가마의 구조와 변천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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