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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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충청북도 진천 서쪽 지역에 있던 백제의 성. 금현성은 550년(백제 성왕 28년, 고구려 양원왕 6년) 백제가 고구려 영토에 있던 도살성(道薩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고구려가 이에 대응해 함락시킨 백제의 성이다. 오늘날의 충청북도 진천군 서쪽이라는 설이 있고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과 전의면의 경계에 있는 금이성(金伊城)이라는 설도 있다. 금현성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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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부. 본관은 전의(全義). 남편은 경주김씨(慶州金氏) 김태정(金台鼎)이다. 시아버지가 선천적으로 병이 있었는데 매우 심하여 백약이 무효하자, 허벅지 살을 도려내어 달여 먹여 소생케 하였다. 여러 차례 지방 장관에게 추천되었으며, 암행어사로부터 상(賞)으로 비단옷을 받았다. 유림들이 글을 내어 감사(監司)의 포제(襃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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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발생한 남·북한 전쟁 시기에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전개된 7월 7일~10일의 싸움. 좌익과 좌우 합작파의 반발 속에서 출범한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부는 경제난까지 겹쳐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다. 게다가 1948년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까지 일어나고 지리산과 태백산 일대에는 1950년 봄까지 좌익 게릴라 활동이 계속되어 내전에 가까운 상태로 치달았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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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전개된 항일 국권회복운동. 의병항일전은 외세 침략에 대한 민족으로서의 항쟁이며 생존권을 위한 저항으로 그 원류는 인간 본연적인 데 있으며, 한국사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이다. 고려·조선 때 대거란전이나 대몽항쟁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의병 등의 오랜 전통이 개항기에 들어와서 부활한 것이다. 또한 구한말 의병항일전의 사상적 맥락의 하나는 민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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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영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전의이씨(全義李氏)의 시조는 이도(李棹)이다.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삼한개국(三韓開國) 익찬이등공신(翊贊二等功臣)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책록되었고, 전산후(全山侯)에 봉해졌다. 전산은 전의(全義)의 옛 이름으로, 이도가 전산후에 책봉된 후 전의의 이성산(李城山) 아래에 정착한 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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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북도 진천이 속해 있던 행정 구역. 청주(淸州)는 919년(태조 2)에 청주로 이름 붙여졌고 983년(성종 2)에 처음으로 12목을 설치했을 때 청주가 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 후 1018년(현종 9) 8목으로 정리되었을 때도 청주목(淸州牧)은 충청권역의 행정 중심지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신라 말 중앙정부의 지배력이 약화된 틈을 타 호족이라 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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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맑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날 찾아간 용몽리 몽촌마을은 마치 동화 속 마을처럼 아기자기하니 한 폭의 풍경 같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마을 입구에 ‘꿈마을’이라고 예쁘게 적힌 비석이 푸른 하늘과 함께 우리를 반겨 주는 듯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왼쪽 길가에 넓게 그늘을 만들고 있는 은행나무다. 198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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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우리민족은 일제의 무조건 항복과 패망으로 35년간의 일제 사슬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해방 후 국제정세는 우리민족의 자유로운 국가건설을 어렵게 만들어갔다. 일본을 패망시키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북을 분할 점령하고,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와 소련식 사회주의 국가를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