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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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삼국시대의 진천 지역은 삼국이 접경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지배 영역 속에서 삼국의 교육 제도와 문화적 영향을 받았으리라 보여 진다. 고구려는 각 지방에 사립 학교인 경당을 세워 평민의 미혼 자녀들에게 독서와 궁술을 익히게 하였으므로 고구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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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도하리와 광혜원면 실원리를 잇는 도로. 국도 17호선은 전라남도 여천시~경기도 용인시 간의 길이 407㎞의 일반국도이다. 충청북도의 총연장은 66.408㎞의 포장도로로서 2차선이 7.145㎞이고 2차선은 48.703㎞이며 6차선은 10.56㎞이다. 충청북도의 국도 17호선의 노견포장 길이는 좌우 모두 66.408㎞이고 시군별 노선의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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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이루어진 계몽주의 교육. 근대교육은 근대 국가의 성립이나 자본주의 사회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된 교육으로 주로 계몽 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근대교육은 한국의 근대를 어떻게 시기 구분하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본격적인 개항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880년대부터 1945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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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사송(四松)의 ‘송(松)’자와 내두(內斗)의 ‘두(斗)’자를 따서 송두리(松斗里)라 하였다. 사송은 사묵의 중간에 있는 마을로, 네 그루의 소나무가 있던 마을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내두는 읍내리 동북쪽 1.5㎞ 지점에 있는 마을로, 텃골과 방말을 합쳐 송두리의 안쪽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조선 말기 진천군 월촌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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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벽암리·행정리에 걸쳐 있는 논. 전하는 말에 따르면 조선 초기 기름진 넓은 평야를 지주(地主) 세 사람이 거의 소유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연삼을 연삼(連三)으로 보아 들이 읍내리·벽암리·행정리 등 3개 마을에 걸쳐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1911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서 ‘연삼아들’에 ‘연삼하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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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진천군 남변면(南邊面) 지역을 읍내(邑內)라 부른 데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리(上里)·하리(下里)의 각 일부와 남변면의 관문리·상장리를 병합하여 읍내리(邑內里)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 군중면을 진천면으로 개칭하였고, 1973년 진천면이 진천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진천읍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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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이호신의 공적을 기리는 비. 이호신(李鎬臣)은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중산리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하여 천석지기의 부농이 되었으며, 많은 재산을 교육 사업에 바쳤다. 1940년 상산초등학교는 현재의 삼수초등학교 터에서 28년을 지내오는 동안 협소한 부지와 노후한 교실로 인해 학생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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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수령 577년의 보호수. 회화나무는 유서 깊은 서원이나 명문 가문의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으로 손꼽히며 학자목(學者木)이라고도 한다. 회화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유명한 학자가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있고, 회화나무 세 그루면 대길(大吉)한 일만 생긴다는 이야기도 있다. 농민들은 회화나무를 신목으로 여겼는데, 이는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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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서 매월 5일과 10일에 열리는 시장. 진천장(鎭川場)은 일제강점기에는 진천읍내장이라 하였는데 진천군에서 가장 큰 면적과 이용객 수를 자랑하는 중심시장이다. 읍내리 4구의 소전거리에는 군내에서 가장 큰 우시장도 있었다. 소전거리의 우시장은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 55-2번지[문화로 263-50]로 이전되어 부지 면적 4,910㎡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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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채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던 향은정에 올라 주변 풍경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향은정(香隱亭)은 읍내리의 진천읍사무소 북쪽에 있던 정자로서, 진천읍내의 모든 지역을 바라볼 수 있는 일종의 망루(望樓)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한 향은정 주변에 삼수원(三秀園)이란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정원도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모두 흔적조차 찾을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