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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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사양리에 있는 삼국시대 가마터. 사양리 목탄요지 1호·2호는 진천문백농공단지 조성 부지 내에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서 신정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가면 왼쪽에 진천농공단지가 있고, 오른쪽에는 삼진아파트가 서 있다. 삼진아파트를 지나면 작은 다리가 나오는데 다리를 건너기 전에 오른쪽 갈림길로 들어서면 왼쪽에 3개의 능선이 나란히 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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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덕리·차상리, 북변면의 지석리·분암리, 남변면의 신정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삼덕리(三德里)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하였다. 1930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천읍에 편입되었다. 차령산맥(車嶺山脈) 줄기가 서쪽으로 무이산[462m]에서 만뢰산(萬賴山)[612m], 남쪽으로 문안산(文案山)[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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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역사를 기록하기 이전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선사는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로서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를 이른다. 현재 진천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은 발견되지 않아서 당시의 구체적인 문화상을 가늠해 볼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유적은 미호천 주변의 초평면 연담리에서 빗살무늬토기편 1점이 발견됨으로써 신석기인이 이곳에 거주하였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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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성평리(聖坪里)의 ‘성(聖)’자와 지석리(支石里)의 ‘석(石)’자를 따서 성석리(聖石里)라 하였다. 성평(聖坪)은 지금의 진천중학교 앞으로 흐르던 냇가 주변에 형성된 들이다. 1444년(세종 26) 세종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하여 청주 초정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있던 냇가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이후로 당시 지명이던 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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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서 소강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소강정 전설」은 노처녀의 원혼이 붙어 선비들을 해코지한 바위에 얽힌 전설이다. 1982년 진천문화원에서 출간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마을 앞산 아래에 조그만 강이 흐르는데, 강 옆으로 널찍한 바위가 하나 있다. 옛날, 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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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송두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생활 유적지. 송두리 유적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에서 시행한 진천-진천IC 도로 확장 및 포장공사 구간 내 구석기 유적에 대한 구제발굴[도로나 댐건설 등 유적파괴 사유 발생시 행하는 발굴]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송두리 유적의 발굴 조사 결과 모두 2개의 구석기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그 가운데 기반암 풍화층 바로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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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신대리의 ‘신(新)’자와 옹정리의 ‘정(井)’자를 따서 신정리(新井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남변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대리·김금리·옹정리·원앙리·검실리·월교리, 덕문면의 상덕리, 북변면의 지석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정리라 하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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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수령 147년의 보호수. 신정리 느티나무 5호는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2.8m, 뿌리 부분 둘레 3.85m, 나무갓 너비 20m이다. 『선만식물지(鮮滿植物志)』에는 규목(槻木)이라 하며,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야에서 많이 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은 자유(刺楡)를 방언으로 ‘늣회’라 부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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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수령 120년의 보호수. 신정리 느티나무 6호는 높이 16m, 가슴높이 둘레 2.5m, 나무갓 너비 14.5m이다. 신정리 느티나무 6호는 1982년 11월 11일 노거수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관리면적은 5㎡이며, 박대현이 관리를 하고 있다. 나무 아래 땅은 흙으로 되어 있고, 사면이 개방되어 있다. 나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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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구석기와 원삼국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적. 구석기에 관련된 유물은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 선진아파트 단지 입구의 도로 맞은편에 남아 있는 구릉의 끝부분 해당하는 신정리 377-13[전], 377-14[전], 377-15[전], 377-8[전], 377-9[전], 377-11[전], 377-12[전], 399-1[전], 399-2[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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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발생한 남·북한 전쟁 시기에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전개된 7월 7일~10일의 싸움. 좌익과 좌우 합작파의 반발 속에서 출범한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부는 경제난까지 겹쳐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다. 게다가 1948년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까지 일어나고 지리산과 태백산 일대에는 1950년 봄까지 좌익 게릴라 활동이 계속되어 내전에 가까운 상태로 치달았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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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충청북도는 역사적·지리적으로 서울과 삼남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개신교 초창기부터 각 선교부의 선교 거점이 되었다. 1900년을 전후하여 충청북도 지역 특히 청주 지역에는 장로교를 비롯한 감리교·침례교 선교사들의 간헐적 왕래를 통한 순회방식의 전도가 추진되었다. 순회방식의 전도란 결국 도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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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 진천군은 차령산맥이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달리고 있어 산악이 많고 동북부는 광혜원면과 백곡면의 경계를 흐르는 미호천 지류들이 남류하여 비교적 넓은 진천평야를 이루고 있다. 진천군은 충청북도 3시 10군 중의 하나로서 삼한시대에는 수지(首知) 또는 신지(新知)로, 고구려시대에는 금물노군(今勿奴郡)으로, 신라 관할 이후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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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에 있는 진천읍 관할 행정 기관. 진천읍사무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진천군의 남쪽에 위치하여 남면으로 칭하여 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중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17년 군중면을 다시 진천면으로 개칭하였으며 1930년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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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평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평산리 고인돌군은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평사마을 121번지에 있다. 진천읍에서 신정리를 거쳐 문백면으로 가다 보면 성주머리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에서 왼쪽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가면서 만나는 좁은 밭 한 가운데에 고인돌이 있다. 2009년 현재 존재만 확인되었을 뿐 발굴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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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우리민족은 일제의 무조건 항복과 패망으로 35년간의 일제 사슬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해방 후 국제정세는 우리민족의 자유로운 국가건설을 어렵게 만들어갔다. 일본을 패망시키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의 남북을 분할 점령하고, 미국식 자본주의 국가와 소련식 사회주의 국가를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