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9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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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士貞 |
이칭/별칭 | 정숙(正叔),후송재(後松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용만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숙(正叔), 호는 후송재(後松齋).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김세우(金世佑)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義城 金氏)로 김만겸(金萬謙)의 딸이다. 만취당 김사원(金士元)의 아우이다.
[활동 사항]
김사정(金士貞)[1552~1620]은 젊어서 재예와 총명이 과인하였으며, 가훈에 따라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퇴계 이황를 사숙하며 면학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중형(仲兄)인 김사형(金士亨)과 함께 창의하여 망우당 곽재우를 따라 왜적에게 항전하여 크게 공을 세웠다. 창녕 화왕산성에서 섶을 깔아 맹서하되 “피로서 맹서하니 마음은 칼날과 같고 몸은 불살라도 재가 되지 않으리.[삽혈심여인 분신지불회(歃血心如釰 焚身志不灰)]”라고 하였다. 전란이 끝난 뒤 계속해서 후진 장학(獎學)과 저작(著作)에 힘을 썼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1882년(고종 19) 후손 김기선(金驥善) 등이 편집, 간행한 『후송재집(後松齋集)』과 이황의 예설을 정리한 「계문 예설(溪門 禮說)」 등이 전한다. 김사정의 시(詩)로 「고운사 구호(孤雲寺 口號)」·「알도산묘(謁陶山廟)」·「강상음(江上吟)」·「월야음(月夜吟)」 등은 대표적인 작품으로 웅건하고 유창하다는 평을 받는다. 서(書)인 「기아형(寄兒泂)」은 아들 김형(金泂)에게 보낸 것으로, 『대학』은 성현의 학문에 들어가는 문이며, 이 글의 요점은 ‘경(敬)’이기 때문에 경을 주축으로 하는 대학도(大學圖)를 만들어 보낸다는 내용이다. 잡저(雜著)인 「가계(家戒)」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꼭 지켜야 할 8조의 계칙으로서 근부부(謹夫婦)·친부자(親父子)·화형제(和兄弟)·서장유(序長幼)·봉제사(奉祭祀)·목족린(睦族隣)·어동복(御僮僕)·교붕우(交朋友) 등을 들고 옛날의 가언과 선행을 예시하면서 이를 지킬 것을 강조한 글이다.
[상훈과 추모]
철종 때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에 추증되고,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에 있었던 도담사(道潭祠)에 배향되었다. 1832년(순조 32)부터 향례를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