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9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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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得民 |
이칭/별칭 | 경민(景民),이각(伊覺),설강(雪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용만 |
출생 시기/일시 | 1585년 - 김득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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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21년 - 김득민 무과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37년 - 김득민 쌍령 전투 참전 |
몰년 시기/일시 | 1637년 - 김득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93년 - 김득민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 |
추모 시기/일시 | 1961년 - 김득민 충효각 건립 |
출생지 | 김득민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 |
성격 | 무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증 승정원 좌승지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이각(伊覺), 초명은 경민(景民), 호는 설강(雪崗). 김유신 장군의 후예이며 김일손(金馹孫)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창녕 현감(昌寧 縣監)을 지낸 김대장(金大狀)이고, 할아버지는 장사랑(將士郞)을 지낸 김순(金錞)이고, 아버지는 김치방(金致邦)이고, 어머니는 안동 김씨이다. 부인은 김언형(金彦亨)의 딸 경주 김씨(慶州 金氏)이다.
[활동 사항]
김득민(金得民)[1585~1637]은 성질이 활달하고 부모님 섬기기를 효성으로 다했다. 3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부사과(副司果)가 되었으나 부모님 병환에 지극하게 시탕(侍湯) 수발을 하였고 부모상을 당해 출사하지 못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다음 해인 1637년(인조 15) 정월 15일 홀로 남한산성 동북 20리 지점인 쌍고개[雙嶺]에서 적을 많이 사살하고 전사하였다. 이때 뒤따르던 두 아들도 적진으로 내닫다가 함께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병자호란 때 순절하여 선무랑(宣務郞) 사도시 주부(司䆃寺 主簿)에 증직되었다. 1893년(고종 30) 5월 1일에 경상도 내의 유림들이 고종의 서릉(西陵) 행차 시 상소를 올려 1893년 11월 15일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 좌승지(承政院 左承旨)에 증직되었다. 이때 김득민의 아들 김호영(金鎬榮)은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증직되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팔성리에 충효각(忠孝閣)을 세워 김득민·김호영 부자(父子)를 기리고 있다. 이 충효각은 당초 경의사(景義祠)라고 하였으나 훼철되었고, 1961년에 다시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