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817 |
---|---|
한자 | 羅天瑞 |
이칭/별칭 | 안천군(安川君),안정백(安定伯),정백(定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안정 2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위은숙 |
거주|이주지 | 안정현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안정리 |
---|---|
묘소|단소 | 고려 시중 안천군 나공천서지묘(高麗 侍中 安川君 羅公天瑞之墓)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안정2리 해망산 |
사당|배향지 | 홍양사 - 충북 청원군 내수읍 비중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안정 |
대표 관직 | 진무 |
[정의]
고려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정백(定伯). 안정 나씨(安定 羅氏)의 시조이다. 아들은 나직경(羅直卿)이다.
[활동 사항]
나천서(羅天瑞)는 생몰년 미상이다. 고려말 공민왕은 요동 수복을 위해 동녕부 정벌을 단행하였다. 1369년(공민왕 18) 12월 이성계(李成桂)를 동북면 원수(東北面 元帥), 지룡수(池龍壽)를 서북면 원수(西北面 元帥)로 삼아 군사 1만 5000명을 거느리고 동녕부를 치게 하였다. 1370년(공민왕 19) 8월 제2차 동녕부 정벌이 단행하여 11월에 요동의 중심지인 요양성(遼陽城)을 함락하였다. 그러나 추위와 기근으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부근 주민에게 귀순할 것을 권고하고 군사를 돌이켰다.
군사가 송참(松站)에 도착했을 때 진무(鎭撫) 나천서가 양곡 수 백석을 구하여 군사들에게 제공하였다. 이 공으로 안정백(安定伯) 겸 안천군(安川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고려가 멸망한 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의리로 조선조에 출사를 거부하고 아들 나직경을 데리고 안정으로 내려와 두문 불출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고려 왕조에 대한 절의로 두문동(杜門洞) 72현에 올랐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안정리 해망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72년 청주 홍양사(鴻陽祠)에 후손들과 함께 위패가 봉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