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 > 세종시향토문화백과 > 삶의 내력(역사) > 전통시대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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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세종 지역의 역사. 세종특별자치시는 조선시대에 연기현(燕岐縣)과 전의현(全義縣)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독립적인 행정 구역으로서 독자적인 변천 및 역사와 함께 지리적 환경, 정치와 군사, 사회경제, 각종 국가시설, 성씨와 인물 등 다양한 문화적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조선시대 연혁을 정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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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연기현(燕岐縣)은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할 때 연기군으로 개칭되어 유지되다가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세종특별자치시에 흡수·폐지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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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전의현(全義縣)은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제정되어 조선 말까지 유지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현(縣)을 군(郡)으로 일괄 개칭할 때 전의군으로 개칭되어 승격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연기군에 병합되어 일부 지역이 연기군 전의면으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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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의 옛 지명으로, 조선 태종 때 전의현과 연기현을 합쳐 신설한 현. 전기현(全岐縣)은 조선 시대에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인 전의현(全義縣)과 연기현(燕岐縣)을 병합한 현(縣)의 명칭이다. 1414년(태종 14) 전의현과 연기현을 병합하였으나 병합된 군현의 원성과 반발로 1416년(태종 16)에 전의현과 연기현으로 다시 분리되었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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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 문의현(文義縣)은 충청북도 청원군 부강면 일대가 소속되어 있던 조선시대 행정구역으로, 백제 때 일모산군(一牟山郡)이었으나 757년(신라 경덕왕 16) 연산군(燕山郡)으로 고쳐지고 고려시대인 1260년(고종 46)에 문의현으로 고쳐졌다. 그 뒤 여러 차례 변천을 거쳐 1895년(고종 32) 군으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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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전의현과 연기현을 관통하는 역로에 세워 통신, 교통 및 숙박 기능을 담당하던 역과 원. 역(驛)은 전근대 사회의 교통·통신 기관으로, ‘우역(郵驛)’이라고도 한다. 역에는 기본적으로 말[馬匹]과 역장(驛長)·역정(驛丁) 등 관리 인원을 두고 국가 명령과 공문서 전달 업무를 맡았으며, 공무(公務)로 인한 여행자에게 필마(匹馬)를 제공하고 숙식 알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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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지역에 있던 김제역과 금사역이 소속된 찰방역. 성환도(成歡道)는 조선시대 때 금정도(金井道), 시흥도(時興道), 이인도(利仁道) 등과 함께 충청남도 지역에 설치된 4개의 찰방역(察訪驛) 중 하나이다. 본역인 성환역과 속역 11개를 관할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대곡리의 김제역과 연기면 해밀리의 금사역이 조선시대 때 성환도의 속역 11개에 속하였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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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지역에 있던 역. 금사역(金沙驛)은 옛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갈운리에 있던 역으로, 성환역(成歡驛)의 작은 소역이었다. 금사역이 존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갈운리는 2012년 7월 아름동, 도담동과 함께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산울리, 해밀리에 편입·분리되었다. 금사역은 갈운2리의 양지마을과 국도 제1호가 접해 있는 갈운리 검새울 마을 공동묘지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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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 지역에 있던 역. 김제역(金蹄驛)은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대곡3리 ‘역말’에 있었던 역원이다. 김제역이 있었던 대곡3리 역말은 행정구역상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하지만 천안시와의 접경에 가깝다. 천안 시내에서 불과 10㎞ 정도 거리에 불과하며 국도 제1호가 통과하고 있어 주민들의 생활권이 천안 시내 권역인 지역이다. 김제역은 충청도에 설치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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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역 조세를 거두어 중앙으로 운반하던 조창·조운로 등과 관련된 제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각 지방에서 조세로 거둔 현물을 수도인 중앙으로 운송하였다. 이때 조운(漕運)을 통하여 내륙의 수로나 바닷길을 이용하였다. 수운(水運) 또는 참운(站運)이라 하였으며, 해로를 이용하는 경우는 해운(海運)이라고 하였다. 조창에서는 세곡을 겨울철에 거두어들인 후 이른 봄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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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역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전통 시대의 통신 시설로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를 이용하여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신호를 보내 변경의 위급을 중앙에 통보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에는 용수산(龍帥山) 봉수가 있었다. 봉수(烽燧)는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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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연기현감 허만석이 조천에 제방을 쌓은 일.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의 읍내 일대는 조선 전기에 저지대인 곳이었다. 허만석(許晩石)이 연기현감으로 부임한 1427년(세종 9) 무렵에는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었다. 또한 계속된 가뭄으로 농사가 잘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였다. 연기현감 허만석은 연기현 치소에서 북쪽으로 15리 되는 지점에 큰 제방[堤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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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현 세종특별자치시를 비롯해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 1592년 4월 일본은 20만 명의 대규모 병력으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육군 병력으로는 15만 8700명이나 되는 대군이 동원되었다. 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하자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18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두 달 만에 평양과 함경도 지방까지 유린했다. 하지만 전국 팔도 곳곳에서 의병과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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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인조반정 직후 논공행상 불만과 반란을 일으킨다는 무고를 받은 이괄이 일으킨 내란 사건. 이괄(李适)[1587~1624]의 난은 1624년(인조 2)에 이괄이 조선 왕가 종실 흥안군 이제를 왕으로 추대하며 일으킨 반란이다.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를 당하자 난을 일으켜 한양까지 함락시켰다. 조선 내란으로는 처음으로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