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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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奉畓水畓- |
영어공식명칭 | Bongdap Sudapnory |
이칭/별칭 | 봉답 수답 윷놀이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 |
시대 | 근대,현대 |
집필자 | 임영수 |
놀이 장소 | 봉답 수답놀이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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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전통 놀이 |
노는 시기 | 정월 대보름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에서 윷놀이로 한 해 농사의 풍년을 점치는 놀이.
[개설]
봉답 수답놀이는 윷놀이에서 두 편으로 나눈다. 한쪽 편은 봉답 편이고 다른 한쪽은 수답 편이다. 봉답은 마을에서 높은 지대에 있는 논을 지칭하고 수답은 낮은 지역에 있는 논을 지칭한다.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 마을 사람들은 옛날부터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회관에 모여 윷놀이를 한다. 단순히 즐기려는 놀이로 그치지 않고 보름이 지나면 농사일에 전념하여야 하므로 농사가 풍년이 드느냐 흉년이 드느냐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풍년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데 비가 많이 오면 마을 높은 곳에 있는 논에 물이 충분히 차므로 전체가 풍년이 난다. 비가 적게 오면 낮은 곳의 논에 물을 우선 대서 모내기를 하여야 하므로 강우량를 점치는 의식이 바로 윷놀이이다. 봉답팀이 이기면 비가 많이 내려 쉽게 풍년이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답팀이 이기면 비가 적게 올 테니 대책으로 낮은 지역의 논 먼저 모내기를 하는 대비를 하도록 놀이로써 점을 치는 것이다.
[연원]
윷놀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속놀이이다. 윷놀이의 유래는 고대 부여에서 관직을 정할 때 구가·마가·우가와 같은 부족의 상징적인 동물을 윷놀이의 말판에 표시하여 놀았다고 한다. 신라에서 5 부족이 각각 돼지, 개, 염소, 소, 말을 길렀으므로 신라시대부터 놀았다고 하는 설도 있다. 그러나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고인돌 덮개돌에 윷판이 새겨진 것이 전국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부터 놀았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윷놀이판은 29개의 말밭으로 되어 있는데 말밭의 네 면은 북두칠성을 의미하고 가운데는 북극성으로 별자리를 응용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에서 정월 보름에 노는 봉답 수답 윷놀이는 시작 시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 다만 먼 옛날부터 마을에 내려오는 세시풍습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정월 대보름 놀이이므로 마을회관이나 회관 마당에서 놀이를 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기에는 회관 마당이 적당하다. 마당에서 놀 때 큰 멍석, 말판, 윷, 말이 필요하다. 봉답·수답 편을 나눌 때는 지푸라기가 필요하다. 참여한 사람 수만큼 지푸라기를 준비하여 반은 길고 반은 짧게 만든다. 긴 것과 짧은 것을 섞어 밑은 감추고 머리만 쥐어 뽑아서 편을 나눌 때 사용한다.
[놀이 방법]
마을 회관에 멍석을 깔고 동네 사람들이 모인다. 윷과 말판을 준비하고 지푸라기는 윷놀이 참여자 수만큼 준비하는데 반은 길고 반은 짧다. 지푸라기로 제비뽑기를 하여 긴 것을 뽑으면 봉답 편, 짧은 것을 뽑으면 수답 편이 된다. 윷가락은 네 개이고 한 개가 아래면 쪽으로 뒤집어지면 ‘도’라 하여 윷 말이 한 칸 이동, 두 개는 ‘개’라고 하여 두 칸 이동한다. 세 개는 ‘걸’이라고 하여 윷 말이 세 칸 이동하고 네 개가 모두 뒤집어지면 ‘윷’이라고 하여 네 칸 가고 한 번 더 던진다. 윷가락 네 개 모두가 등을 보이면 ‘모’이다. 모가 나오면 윷 말은 다섯 칸을 이동하고 한 번 더 던진다. 윷가락으로 나오는 칸수만큼 윷 말이 이동하여 4개의 말을 모두 빨리 말판 밖으로 빼는 쪽이 이긴다. 놀이가 끝나고 나면 봉답 편과 수답 편이 각각 한 해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의 봉답 수답 윷놀이는 정월 보름날 마을 세시로 놀고 있지만 윷놀이는 일반 가정에서나 우리 민속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언제 어느 때나 하고 있다. 봉답 수답놀이는 윷놀이를 이기는 편의 결과로 한 해 농사를 대비하는 의미가 크다. 그러므로 호탄리의 윷놀이는 윷점과 같다. 윷점은 정초에 가정에서 한 해 신수를 보는 것으로 오랜 옛날부터 놀았던 세시풍속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중요한 것을 결정할 때에는 윷점을 쳤는데 난중일기에는 윷점을 ‘척자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현황]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는 세종특별자치시 출범으로 인하여 마을 일부가 건설지역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예전의 농촌 생활이 도시 생활로 바뀌었다. 주민이 사는 마을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논과 밭이 건설 지역에 수용되어 보상을 받고 이사 간 사람도 있고 건설 지역에서 식당이나 상가로 전환한 사람 등 다양하게 변모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호탄리는 금호중학교를 중심으로 길의 남쪽은 옛 마을 그대로 남아있지만 북쪽은 건설 지역으로 ‘호여울 아파트’가 지어져 있다. ‘호여울 아파트’라는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면서 이주하여 온 사람들은 기존의 주민들과 세시풍속에 낯설어하여 놀이 등을 계승하기 힘들어졌다. 다만 마을 젊은이 중에는 지역 민속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