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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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永根 |
영어공식명칭 | Gim Yeonggeun |
이칭/별칭 | 석정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윤철원 |
[정의]
일제강점기 세종 지역에서 상업으로 기반을 닦은 경제인이자 교육사업가.
[가계]
아버지는 김한중(金漢重)이고 어머니는 강릉진씨(江陵陳氏)이다. 청암(淸巖) 김원근(金元根)이 친형이다.
[활동 사항]
경상북도 경주에서 출생한 김영근(金永根)[1888~1976]은 동학농민군 봉기가 일어난 1894년 가세가 기울어 만 6세의 나이에 행상 김국선을 따라 청주로 이주하여 살았다.
이후 10세에 군산·이리 등지를 떠돌며 행상을 하였고, 12세부터 5년간 남양주에서 살았다. 17세에 친형 김원근이 사는 조치원에 정착하여 형과 더불어 상업에 종사하였다.
1914년 26세에 부산에서 명태 12화차를 싣고 와 청주·공주·천안 등지에 풀어 4만 원의 거금을 버는 상재(商才)[장사를 하는 재능]를 발휘하였다.
이후 부산·마산 등지에서 해산물을 구입하여 철도로 중부 지방에 공급하는 등 남다른 사업 수완으로 많은 이익을 냈다.
1924년 조치원에 상업학교를 설립하기 위하여 김원근·김영근 형제가 거금 3만 원을 희사(喜捨)[남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의 재물을 내놓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26년 38세에 함경북도 원주로 이주하여 김영근 상회를 설립하고 만주와 일본을 오가며 무역하여 재벌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1944년 원산에 중학교를 설립하였으나 1945년 공산 치하가 되자 원산에 있는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월남하였다.
이후 형 김원근과 육영사업에 매진하여 청주에 대성학원을 설립하고 초·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51년에는 청주대학교 설립에 기여하였다.
김영근은 광복 후 조치원에서 살다가 88세를 일기로 작고하였다.
[묘소]
김영근의 묘소는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부모산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영근은 1970년 5·16민족상 교육부문 본상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