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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성 전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340
한자 支羅城戰鬪
영어공식명칭 Battle of Jilas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이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660년 7월 - 의자왕이 항복하였음에도 백제 지역의 부흥운동이 지속되자 전투가 진행됨
전개 시기/일시 662년 7월연표보기 - 신라와 당 주둔군이 웅진 동쪽의 지라성을 공격
전개 시기/일시 662년 8월연표보기 - 신라군이 내사지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킴
발생|시작 장소 금강 유역 지라성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과 대전광역시 대덕구 일대지도보기
종결 장소 금강 유역 지라성 일대 - 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 일대
성격 전투
관련 인물/단체 신라 주둔군|당 주둔군|백제부흥군

[정의]

662년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일대에서 신라와 당 주둔군이 백제 부흥운동을 진압한 전투.

[개설]

662년 7월 신라와 당 주둔군이 웅진 동쪽의 지라성을 공격하여 백제 부흥운동을 진압한 전투이다. 660년 7월 신라와 당의 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하여 의자왕이 항복하였음에도 백제 지역의 부흥운동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662년 7월에 벌어진 지라성(支羅城) 전투로 백제 부흥 세력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의하면 “가을 7월에 유인원과 유인궤 등이 백제 측에 방비가 없는 것을 알고는 갑작스럽게 출동하여 격파하고서 지라성[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래동 질현성] 및 윤성과 대산책, 사정책[대전광역시 중구 사정동 사정성] 등의 성책을 함락시켜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으며, 이어 군사를 나누어 지키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경과]

신라는 당군과 함께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지라성, 윤성, 대산책, 사정책 등을 함락시키면서 금강 유역의 전략적 거점을 대부분 차지하게 되었다. 8월에는 신라가 공격하여 내사지성[대전광역시 서구 월평동]을 빼앗은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확인된다. 당시 함락한 지역은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일대를 포함하는 소비포현(所比浦縣) 일대와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포함되는 곳으로, 백제의 우술군(雨述郡)이었다가 757년(경덕왕 16) 비풍군(比豐郡)으로 고친 곳이다.

[결과]

지라성 전투이후 백제 지역의 부흥운동이 이어지자 신라는 663년 9월까지 백제 부흥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전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백제 땅의 북부에 해당하는 충청남도 일대가 거의 신라와 당 주둔군의 점령 아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지라성 전투는 이후 백제 부흥세력을 궁지로 몰아 정치적 위기를 자초하게 하였고, 백제 부흥세력의 몰락을 가져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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