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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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愹 |
영어공식명칭 | Yoon Yong |
이칭/별칭 | 군열(君悅),청고(靑皐),유헌(萸軒),소선(蕭仙)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윤섭 |
출생 시기/일시 | 1708년 - 윤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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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35년 - 윤용 진사시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740년 - 윤용 사망 |
출생지 | 한성부 - 서울특별시 |
거주|이주지 |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
거주|이주지 | 한성부 - 서울특별시 |
활동지 |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
활동지 | 한성부 - 서울특별시 |
성격 | 문인|화가 |
성별 | 남 |
본관 | 해남(海南) |
[정의]
조선 후기 해남에서 활동했던 문인화가.
[가계]
윤용(尹愹)[1708~1740]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군열(君悅), 호는 청고(靑皐)·유헌(萸軒)·소선(蕭仙)이다. 할아버지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이며 아버지는 윤덕희(尹德熙), 어머니는 심채원의 딸 청송심씨(靑松沈氏)이다. 부인은 이명우(李明遇)의 딸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다.
[활동 사항]
윤용은 1708년(숙종 34) 한양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할아버지 윤두서, 아버지 윤덕희와 함께 해남으로 내려왔다. 1731년(영조 7) 한양으로 이주한 후 과거 공부에 매진하여 1735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윤용은 시율과 시부를 잘 지어 여러 번 과시에 합격하였고 성균관에서 함께 공부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널리 알려졌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완산악부」, 「의장십구승」 등이 있다.
윤용의 그림은 20대부터 주목을 받았다. 남태응(南泰膺)[1687~1740]은 1732년에 쓴 글에서 “윤덕희의 아들 윤용 또한 재주가 빼어나 앞으로 나아감을 아직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다만 그 성공이 어떠할지 기다릴 뿐이다.”라고 평하였다. 윤용은 20대부터 이미 화명(畫名)이 알려졌고 화가로 대성할 자질이 많았지만 서른세 살 때인 1740년 병들어 사망하였다.
윤용의 그림은 할아버지 윤두서로부터 이어져 온 집안의 가풍을 계승하고 있는데, 화조나 나비·잠자리 등의 초충도(草虫圖)에서도 대상의 미세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살핀 다음 꼭 같도록 그렸다는 정약용(丁若鏞)의 화평이 전한다.
[저술 및 작품]
윤용의 작품으로는 「채애도(採艾圖)」, 「수하필서도(樹下筆書圖)」, 「홍각춘망도(紅閣春望圖)」, 「연강우색도(煙江雨色圖)」 등이 있다. 윤용의 산수화는 가법(家法)으로 정착된 남종화풍(南宗畫風)을 따랐고 풍속화에서는 윤두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