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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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南郡谷里貝塚 |
영어공식명칭 | Haenam Gungokri Shell Moun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725-1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정영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3년 - 해남 군곡리 패총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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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6년 - 해남 군곡리 패총 국립광주박물관과 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 에서 1차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7년 - 해남 군곡리 패총 국립광주박물관과 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 2차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8년 - 해남 군곡리 패총 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 3차 조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3년 7월 2일 - 해남 군곡리 패총 사적 제449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해남 군곡리 패총 사적으로 재지정 |
소재지 | 해남 군곡리 패총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725-1 |
성격 | 패총 |
지정 면적 | 83,569㎡ |
소유자 | 국유|사유 |
관리자 | 해남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방처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개설]
해남 군곡리 패총(海南郡谷里貝塚)은 해남군 송지면 군곡리 방처마을에 있다.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걸친 복합 유적으로 2003년 7월 2일 사적 제449호로 지정되었다.
[변천]
해남 군곡리 패총은 1986년 목포대학교박물관의 『해남군의 문화유적』 지표 조사 보고서에서 ‘군곡리 패총’으로 명명하여 보고하였다. 이후 2002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 때 다시 지표조사가 되었고, 1986년부터 2018년까지 총 6차례 학술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위치]
해남 군곡리 패총은 해발고도 334m의 가공산 서쪽 기슭의 낮은 구릉에 있다. 유적의 규모는 높이 26m의 구릉을 중심으로 길이 300m, 너비 200m 정도이고, 면적은 83,557㎡에 이른다. 구릉은 과거 바다였던 백포만으로 돌출되어 있다. 평탄한 정상부 아래는 비교적 급한 경사면을 이루고 있고 다시 완만한 평지부가 형성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해남 군곡리 패총은 당시 해남문화원의 고 황도훈 원장이 목포대학교박물관에 제보하자 교수 최성락이 패총 유적임을 확인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1983년 3월 『서울신문』 1면에 실리면서 내용이 전국에 알려졌다. 1986년[1차]과 1987년[2차]에는 국립광주박물관과 목포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고, 1988년[3차]에는 목포대학교박물관 단독으로 발굴 조사하였다. 이후 유적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1990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29호로 지정되고 2003년 사적 제449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전체 면적[8만 3557㎡] 중 일부만 조사하여 유적에 대한 전모를 밝히기에는 미비한 점이 많았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경작으로 인하여 유적이 훼손되고 있었다. 2017년[4차·5차], 2018년[6차]에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유적의 성격 규명과 정비·복원에 필요한 기초 자료 및 학술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조사 결과 유적의 구릉 상부와 경사면, 평지부에 걸쳐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구릉의 상부는 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원형계, 방형계 주거지, 토기가마, 독무덤[옹관묘], 움무덤[토광묘] 등의 유구가 밀집 분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방형계 주거지의 경우 중복율이 심한 편이다. 방형계 주거지의 내부 시설은 4주공의 기둥 배치, 벽구, 점토 벽체, 부뚜막 등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주로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로 취사용기에 해당한다.
구릉 경사면은 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패각층과 토기가마로 추정되는 소성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패각층은 구릉 경사면에 분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86년 1차 발굴 조사 때 확인된 패각층을 통해 유적의 시기 구분이 이루어졌다. 패각층은 총 5개 문화층[14개 층]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최하층인 Ⅰ기층[14~12층]은 패각이 쌓이기 이전에 형성된 층이다. 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가 주로 출토되는 층으로 기원전 4세기~3세기이다. Ⅱ기층[11~9층]은 경질무문토기가 화천(貨泉), 철기, 골각기 등과 함께 출토되는 층으로 패각의 퇴적이 시작되는 시기에 해당된다. 기원전 2세기 말 내지 1세기 초부터 기원후 1세기 중엽이다. Ⅲ기층[8층]은 Ⅱ기층과 성격이 비슷한데 토제곡옥과 복골(卜骨)이 출토되는 층으로 기원후 1세기 후반에 해당한다. Ⅳ기층[7~5층]은 경질찰문토기(硬質擦文土器)와 회색연질토기(灰色軟質土器)가 출토되는 층으로 기원후 2세기 초부터 2세기 중엽에 해당한다. V기층[4~1층]은 타날문토기가 등장하는 층으로 기원후 2세기 후반부터 3세기 후반경에 해당한다. 2018년 6차 조사 시에는 타날문토기 위주로 출토되는 최상단층이 추가 확인되어 패총의 하한을 3세기대에서 5세기대로 수정하게 되었다.
구릉 평지부는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 문화층이 존재하며 다양한 유구가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 주거지, 청동기시대 지석묘군, 패각층 등이 확인되었다. 유구간 중복율은 구릉 상부의 사례와 유사하게 심한 편이며 수백기의 유구가 밀집 분포할 가능성이 있다. 지석묘군은 남동쪽에 치우쳐 있으며 상석 2기는 이동되었고 하부 구조는 1기만 남아 있다.
[현황]
해남 군곡리 패총은 2003년 7월 2일 사적 제449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유적의 훼손을 막고 관리 보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종합 정비·복원 계획이 추진 중이다.
[의의와 평가]
해남 군곡리 패총은 발굴 성과에 힘입어 전라남도 지역 철기시대 편년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지석묘로 대표되는 청동기시대와 옹관고분으로 대표되는 삼국시대 사이의 문화적 공백을 메워 주었다. 한편 고대 항로를 통한 철기 문화의 전파 과정, 고대인의 식생활 문화 등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또한 최근 발굴 조사로 생산, 분묘, 취락과 관련한 유구가 추가됨에 따라 패총 유적의 성격과 더불어 복합 유적으로서의 면모도 밝혀지게 되었다. 따라서 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마을 경관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남 군곡리 패총이 있는 백포만 일원은 한반도 서남해의 모서리에 있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중국[낙랑]-한반도-일본 열도를 연결하는 고대 항로의 중심지로 선진 문물이 집산되어 정치·경제적으로 위상이 높았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바다와 내륙을 연결하는 중간 기항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하며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