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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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權氏 |
이칭/별칭 | 영가권씨(永嘉權氏),화산권씨(花山權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집필자 | 나종현 |
세거|집성지 | 안동권씨 세거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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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권행(權幸) |
입향 시조 | 권정주(權定柱) |
[정의]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정주를 입향조로 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세거 성씨.
[연원]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시조는 권행(權幸)으로, 대대로 안동에 살던 토족이었으며, 본래 성은 김씨이다. 김선평(金宣平)·장길(張吉)과 함께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군을 격퇴하여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 태사아부(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에 봉해졌으며,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태사의 지위를 받았다. 또한 태조는 ‘권도(權道)에 통달하였다’며 그에게 권씨(權氏) 성을 하사하여, 이후 후손들이 권행을 시조로 하고 안동을 본관으로 삼았다.
또한 안동권씨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인 『성화보(成化譜)』를 편찬한 성씨로 유명한데, 1476년(성종 7) 간행된 『성화보』는 안동권씨의 연원 등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 건국 이후 간행 당시까지의 문과 급제자 1,794명 중에 51%가 『성화보』에 올라 있어 긴밀히 연결된 당시 지배층의 혈연관계를 전하여 준다.
안동권씨는 10세에 와서 크게 번성하여, 권수중(權守中)을 파조로 하는 수중공파[종파], 권시중(權時中)을 파조로 하는 부호장공파, 권수평(權守平)을 시조로 하는 추밀공파, 권수홍(權守洪)을 시조로 하는 복야공파, 권체달(權棣達)을 파조로 하는 동정공파, 권지정(權至正)을 파조로 하는 좌윤공파, 권영정(權英正)을 파조로 하는 별장공파, 권통의(權通義)를 파조로 하는 부정공파, 권인가(權仁可)를 파조로 하는 시중공파, 권숙원(權叔元)을 파조로 하는 중윤공파, 권사발(權思拔)을 파조로 하는 군기감공파, 권대의(權大宜)를 파조로 하는 광석파, 권추(權樞)를 파조로 하는 호장공파, 권척(權倜)을 파조로 하는 검교공파, 권형윤(權衡允)을 파조로 하는 급사중공파 등 15개의 파로 분파되어 경상북도 안동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세거하고 있다.
[입향 경위]
안동권씨가 현재의 도봉구 지역으로 입향하게 된 것은 추밀공파의 17세 권정주(權定柱)와 그 후예들이 양주·포천 등지에 정착하면서부터인 것으로 파악된다. 권정주는 고려에서 추성익조 동덕보리공신(推誠翊祚同德輔理功臣)의 호를 받은 13세 국재공(菊齋公) 권부(權溥)의 현손(玄孫)이다. 권정주의 생몰 연대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사위인 최운해(崔雲海)의 생년이 1347년, 몰년이 1404년인 것을 감안하면 권정주 또한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로 추정된다. 추밀공파의 16세손 권근(權近)이 또한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이라는 것도 권정주가 그 시대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따라서 권정주와 그 후예들이 양주 지역으로 입향한 시기는 조선 건국을 전후한 시기, 그 중에서도 특히 한성으로 천도(遷都)한 이후 시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구체적인 입향 지역은 알 수 없으나, 양주 해등촌면, 즉 현재의 도봉구 방학동 지역에 안동권씨 집성촌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현황]
도봉구 방학동 안동권씨 집성촌에 과거 약 20~30가구 정도가 주거하였으나, 1985년 이후 방학동 일대가 개발되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현재는 세거지라고 할 만한 지역이 남아 있지 않아 세거의 모습과 세거 성씨의 면모를 확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