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7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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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海弼 |
영어음역 | Jeong Haepil |
이칭/별칭 | 조암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연정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조암(照庵). 할아버지는 효자이자 유학자인 신와(愼窩) 정재경(鄭在褧)이고, 아버지는 정선(鄭鍌)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 홍대욱(洪大勖)의 딸이다.
정해필(鄭海弼)[1831~1887]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외가에서 양육되었다. 효행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드려 치병하였다. 또한 날마다 성현의 가르침에 따라 집안을 다스리면서도 세상에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았다.
수종재(守宗齋) 송달수(宋達洙)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날마다 성현이 지은 책을 벗 삼아 열심히 연구하였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지기를 싫어하였다. 일생 동안 근(勤)과 근(謹)을 토대로 심신을 수양하였으며, 그가 논의했던 주요내용은 인간의 의지 행위에 보다 중점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사상이 골격을 이룬다.
『조암집(照庵集)』 8권이 있다.
고종 때 어진 사람을 천거하라는 명이 있었는데, 재상인 송근수(宋近洙)가 추천하여 감역관(監役官) 벼슬을 주었으나 나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