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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764
한자 鄭在褧
영어음역 Jeong Jaegyeong
이칭/별칭 공실,신와
분야 종교/유교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연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학자
출신지 충청북도 진천군
성별
생년 1780년연표보기
본관 연일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공실(公實), 호는 신와(愼窩).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세손으로 아버지는 누항(陋巷) 정용환(鄭龍煥)이며, 조암(照庵) 정해필(鄭海弼)『상산지(常山誌)』를 쓴 정우섭(鄭友燮)이 그의 손자이다.

[활동사항]

정재경(鄭在褧)[1780~?]의 아버지가 그림 속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올라가는 태몽을 꾸었다고 전하는데, 이 때문인지 정재경은 태어나면서부터 재주가 뛰어났다. 4살 때 방아를 찧는 모습을 보고 글을 짓기를 “큰 나무가 예의를 잘 알기에 남산을 바라보며 아침저녁으로 절을 하고 있구나[大木能知禮 朝夕拜南山]”라는 시를 지어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모친이 병이 드니 맛있는 음식을 드릴 수 없어 안타까워하다 꿩이 부엌으로 날아들자 다려 드렸다. 또한 아버지가 더운 여름철에 종기가 나자 입으로 그것을 빨아드리면서도 그 냄새를 싫어하지 않았다. 김유신 장군을 모신 죽계사(竹溪祠)를 중건하고 통문, 서문, 상량문, 중건기 등을 써서 『죽계사지(竹溪祠誌)』에 수록하였다. 『인물지』, 『진천향토지』 등에 그의 효행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학문과 사상]

송성담(宋性潭)의 문인으로 18세 때 예물을 가지고 송성담에게 인사를 하고 학문을 배웠다. 『중용(中庸)』과 『태극설해박도(太極設解剝圖)』 등을 깊이 공부하여 다른 사람들이 연구하지 못한 글을 새롭게 개척하였다. 학문이 매우 높았지만 과거시험에는 일체 나가지 않았다.

[저술 및 작품]

『죽계사지』를 쓰고 『상산지(常山誌)』를 저술하였다.

[상훈과 추모]

지극한 효행과 넓고 깊은 도학(道學)으로 도천(道薦)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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