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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462
한자 台郞驛址
이칭/별칭 대랑역(臺郞驛) 터,태중역 터,퇴량역(堆糧驛) 터,추량역(推糧驛) 터,태량역(台量驛) 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양기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역 터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고려시대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

[정의]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 역참 터.

[변천]

고려시대에 충청주도(忠淸州道)에 속한 역참의 하나로 퇴량역(堆糧驛)이 설치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충청좌도 율봉도 찰방 소속의 대랑역(臺郞驛)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진천현조에는, 민간에서 추량역(推糧驛)을 태량(台量) 또는 태랑(台郞)으로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보면 태랑역은 그 명칭이 퇴량→추량→대랑→태랑의 변천 과정을 거친 것으로 여겨진다.

1751년(영조 41)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진천현 역원조에 의하면, 태랑역은 말 14필, 이속 40명, 남자 노비 80명, 여자 노비 20명이나 되는 상당히 큰 규모의 역참이었음을 알 수 있다. 태랑역에 관한 기록은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보듯이 조선 후기까지 역이 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는 태락리 역리마을에 설치되었으나 어느 시기에 태락리 다랭이마을 맞은편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되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위치]

문백면에서 잣고개를 넘어 진천읍으로 가는 국도 17호선 상의 서쪽에 자리한 태락리 역리마을에 위치해 있다.

[현황]

현재 태락리 역리마을 곳곳에는 기와편이 출토되고 있으며, 역리마을 왼쪽 야산 밤나무재배단지에서는 당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석축의 원형 유물이 남아 있어 상당한 규모의 역참 조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도 17호선 대신에 고가도로로 세워진 청주-진천-서울로 가는 4차선 도로가 다랭이마을 뒤편 원덕리진천읍을 곧바로 관통해 나가면서 태락리 일대는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의의와 평가]

태랑역 터는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역참 제도의 모습과 변화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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