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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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 있는 게이트볼 경기장. 1989년 광혜원클럽이 조직된 이후 게이트볼 동호인의 활동이 확대되고,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게이트볼의 특성상 전천후 구장이 필요함에 따라 2005년 건립되었다. 513㎡의 면적에 실내구장 1면과 실외구장 2면, 탕비실·화장실 등의 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현재 광혜원게이트볼클럽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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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에 있는 상산임씨 세거지. 구곡리(九谷里)는 원래 구산동(龜山洞)으로 불린 곳으로 구곡리에서 평산리로 넘어가는 굴고개[일명 굴티]를 기준으로 내구와 외구로 나뉜다. 구산동이란 지명도 굴고개에서 유래하였다고 여겨진다. 상산임씨(常山林氏) 시조 임희(林曦)는 신라 말 진천 지역의 호족으로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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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한국 역사에서 시대구분의 기준은 시간적 의미에서 보면, 고려 이전을 고대, 고려를 중세, 조선을 근세, 문호개방 이후 일제강점기를 근대, 그리고 해방 이후를 현대라는 용어로 사용하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자 한다. 물론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라는 용어는 단순한 시간의 전후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사회발전 즉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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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6세손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지휘하는 왜적은 빠르게 북상하면서 여주와 양근을 거쳐 남한강을 따라 서울로 진격하였다. 한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왜군은 죽산과 용인을 거쳐 서울로 올라왔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5월 2일 동대문에 주둔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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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마을은 상산임씨의 천년 세거지로, 마을 주민 대부분이 신라 말의 인물인 임희를 시조로 하고 있다. 우리가 처음에 구곡리 구산동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특정 성씨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주하여 세거지를 이루고 있는 마을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구산동마을 주민들도 천 년 세거지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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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여흥(驪興). 영의정을 역임한 여흥부원군 묵헌공 민청(閔清)의 14세손이다. 민진동(閔鎭東)[1660~?]은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출전하여 공을 세웠다. 영조의 즉위를 두고 소론을 중심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반란을 모의하자, 영조가 반란 모의 세력을 색출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에 이인좌 등이 17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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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세종대왕이 행차하다 유숙하였던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고을 이름. 세종대왕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청주의 초정(椒井)에 행차하다가 하룻밤을 머물다가 갔다고 하여, 북평(北平)을 성평(聖平)이라고 하였다. 1444년(세종 26)에 세종이 안질을 치료하고자 물이 좋다는 청주 내수의 초정에 행차하기 위하여 서울을 떠났다. 세종은 죽산을 거쳐 진천을 지나다가 진천읍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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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진천(鎭川). 송인(宋仁)의 17세손이며, 송광보(宋匡補)의 10세손이다. 송재태(宋載泰)는 숙종이 죽음에 임박하여 병약한 경종의 왕위가 위태로워질 것을 염려하여 노론의 영수 이이명과 독대하여 연잉군[훗날 영조]을 세제에 책봉되도록 하였다. 경종이 승하하자 영조가 노론의 뒷받침으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 소론은 정치적 주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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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삼국~고려시대 보루. 1992년 청주박물관에 의해 문백면 오미마을에서 회청색 경질토기 등이 채집되었다. 채집 유물과 입지 조건을 고려할 때 누각이나 정자 등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2002년 발굴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옥성리 유적은 고려시대에 일시적으로 사용된 방어 시설, 즉 보루로 추정되었다. 유적 내에서는 저장 시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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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발생한 남·북한 전쟁 시기에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전개된 7월 7일~10일의 싸움. 좌익과 좌우 합작파의 반발 속에서 출범한 대한민국의 이승만 정부는 경제난까지 겹쳐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다. 게다가 1948년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까지 일어나고 지리산과 태백산 일대에는 1950년 봄까지 좌익 게릴라 활동이 계속되어 내전에 가까운 상태로 치달았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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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북도 진천에서 전개된 항일 국권회복운동. 의병항일전은 외세 침략에 대한 민족으로서의 항쟁이며 생존권을 위한 저항으로 그 원류는 인간 본연적인 데 있으며, 한국사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이다. 고려·조선 때 대거란전이나 대몽항쟁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의병 등의 오랜 전통이 개항기에 들어와서 부활한 것이다. 또한 구한말 의병항일전의 사상적 맥락의 하나는 민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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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광혜원리에 있는 인라인 롤러스케이트 경기장. 2007년 제47회 충북도민체육대회 인라인롤러 경기장으로 활용하고 인라인 롤러스케이팅 인구의 저변 확대와 동호인들이 마음 놓고 운동할 수 있는 공간 및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광혜원 공원 내에 면적 3,500㎡로 조성되었으며, 우레탄으로 시공된 200m 트랙에 6개 레인이 설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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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상산(常山). 사헌부집의를 지낸 임수경(林秀卿)의 6세손이다. 아들로 임현(林賢)이 있다. 임수전(林秀筌)[?~1592]은 지금의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구산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기상이 늠름하고 재질이 비범하여 6세 때 ‘인생천지간(人生天地間) 충효이자선(忠孝二字先)’이라는 시를 지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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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인좌의 반란 때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대제학 조정수(趙廷壽) 및 충청도절도사 조맹손(趙孟孫)의 후손이다. 병자호란 때 당시 충청북도 진천군의 만노산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한 백파(栢坡) 조감(趙瑊)의 후손으로, 진천에서 거주하며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영조 4년(1728) 이인좌(李麟佐)가 청주(淸州)에서 반란을 일으켜 진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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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의 교회. 충청북도는 역사적·지리적으로 서울과 삼남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개신교 초창기부터 각 선교부의 선교 거점이 되었다. 1900년을 전후하여 충청북도 지역 특히 청주 지역에는 장로교를 비롯한 감리교·침례교 선교사들의 간헐적 왕래를 통한 순회방식의 전도가 추진되었다. 순회방식의 전도란 결국 도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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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 있는 시외버스 정류장. 진천시외버스터미널의 서쪽에는 GS진천터미널주유소, 동쪽으로 길 건너편에는 대강빌딩, 진보빌딩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진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서울·인천·성남·부평 등 수도권, 청주·충주·천안·대전 등 충청권의 직행버스와 진천군·음성군·청주시 전역 등 인근 지역의 농어촌버스 등을 연계하여 운행한다. 진천시외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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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 광혜원면 실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우경과 정인옹주 부부의 묘소. 홍우경(洪友敬)[1590~1625]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경부(敬夫)이다. 1603년(선조 36) 선조와 정빈 민씨 사이에서 태어난 정인옹주(貞仁翁主)와 혼인하여 당원위(唐原尉)에 봉해졌다. 1618년(광해군 10)에 폐모론이 일어나자 이이첨(李爾瞻)의 음모를 성토하다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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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 진천군은 차령산맥이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달리고 있어 산악이 많고 동북부는 광혜원면과 백곡면의 경계를 흐르는 미호천 지류들이 남류하여 비교적 넓은 진천평야를 이루고 있다. 진천군은 충청북도 3시 10군 중의 하나로서 삼한시대에는 수지(首知) 또는 신지(新知)로, 고구려시대에는 금물노군(今勿奴郡)으로, 신라 관할 이후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