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충비(忠婢). 개덕은 문백면 파재에 살던 유의직 집안의 종이었다. 유의직이 태어나기 5개월 전에 유의직의 아버지가 죽고, 또한 유의직이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어머니 최씨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개덕은 젖먹이 자식에게는 미음을 먹이고 유의직에게는 자신의 젖을 먹여 키웠다. 그 후 개덕은 유의직이 성장하자 채지홍(蔡之洪)에게 학문을...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졸재(拙齋). 광평대군(廣平大君) 이여(李璵)의 13세손이다. 만오(晩悟) 이후연(李厚淵)이 중손(中孫)이다. 이호중(李昊中)이 공주 외가에 있을 때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는데, 그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너의 모친 병이 위독하니 빨리 집으로 가서 잉어를 구해 드려라”고 말하였다. 그 길로 집으로 가다...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인물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인물설화는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인물의 유형에는 ‘영웅적 인물’, ‘평범한 인물’, ‘모자라는 인물’ 등이 있다. 어떠한 유형의 인물이든 민중에게 각인되어 역사적·교훈적 의미를 부여하면 구비전승의 대상이 된다. 인물설화도 대부분 특정한 지역이나 사물과 관련되어 있다. 진천 지역...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상산(常山). 호는 극재(克齋)이다. 임형(林灐)는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효성이 지극하여 향천(鄕薦)을 세 차례, 도천(道薦)을 한 차례 받았는데, 이에 대하여 1932년 진천군에서 펴낸 『상산지(常山誌)』「학행(學行)」 편에 ‘임형호극재상산인수업우전재임선생지문유효행삼입...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산수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정한문의 묘소. 조선 후기의 효자 정한문(鄭漢文)은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어려서부터 효성이 극진하고 형에 대한 예의가 남달랐다. 밥을 먹을 때 형이 함께 있지 않으면 먹지 않았고, 어머니가 담질이 있어 너구리를 구하자 시냇가에 가서 울부짖으니 우연히도 얼음이 풀려 고기를 얻어 병을 낫게 하였다고 전한다. 충청...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활동한 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완산이다. 호는 복재(服齋)이다.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1811~1876]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平山里)에서 살면서 평생 유학 연구에 종사하였다. 사후(死後) 임헌회의 제문을 받았다....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서 개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비 개덕 이야기」는 문화유씨(文化柳氏) 집안의 유복자가 된 유의직(柳義直)을 정성을 다해 키워 유씨 문중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는 노비 개덕(介德)에 대한 인물설화이다. 이에 유씨 후손들은 개덕의 묘를 유씨 선산에 모시고 지금까지 시사를 지내고 있다. 진천 고을의 유림들은 개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