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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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烈女晉州鄭氏旌閭 |
이칭/별칭 | 효열부 오상정 처 진주정씨 정려,진주정씨 효열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노호등곡로 30-13[노호리 7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건립 시기/일시 | 1934년 - 열녀 진주정씨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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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4년 - 열녀 진주정씨 정려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4년 09월 30일 - 열녀 진주정씨 정려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3호 지정 |
현 소재지 | 열녀 진주정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노호등곡로 30-13[노호리 71] |
원소재지 | 효열부 오상정 처 진주정씨 정려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노호등곡로 30-13[노호리 71] |
성격 | 정려 |
양식 | 맞배지붕 목조기와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보성오씨 문중 |
관리자 | 보성오씨 문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3호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노호리에 있는 오상정의 처 진주정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세운 정려.
[개설]
열녀 진주정씨 정려는 오상정(吳尙井) 처 진주정씨(晉州鄭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진주정씨는 문영공(文英公) 정수(鄭需)의 후손으로, 정계서(鄭繼緖)의 딸이다. 보성오씨(寶城吳氏) 오현필(吳賢弼)의 14세손 월송처사 오유립(吳裕立)의 넷째 아들 오상정과 혼인하였다.
정씨부인은 온화한 성품으로 시부모와 남편을 정성으로 섬기며 살다가 남편이 병으로 죽자 큰 시름 끝에 자결하였다.
[위치]
부강면 소재지에서 지방도제591호선을 따라 신탄진 방면으로 약 6㎞ 가면 부강면 노호리가 나오고, 노호리 시목교를 건너기 전에 왼쪽 길로 500m 정도 가면 마을 소로 왼쪽으로 이강산업이 나온다.
열녀 진주정씨 정려는 이강산업 뒤 야산에 위치한다.
[변천]
열녀 진주정씨 정려는 1934년 10세손 오희진(吳熙瑨)이 세웠다. 현재의 정려는 1984년에 보수한 것이다.
[형태]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 건물이다.
바닥은 시멘트로 보수하였으며, 8각 고주초석 위에 원형 기둥을 세웠다.
사면을 홍살로 막고, 좌우로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현황]
정려 안에는 효열문 편액과 정려기가 게재되어 있다. 효열문에는 ‘寶城吳公諱尙井妻孝烈夫人晉州鄭氏之門 甲戌正月 日’이라고 쓰여 있다. 크기는 가로 172㎝, 세로 47㎝이다.
정려기는 1934년에 14세손 오희증(吳熙增)의 부탁으로 이재현(李載現)이 썼으며, 문두에는 ‘孝烈婦人晉州鄭氏旌閭記’라고 쓰여 있다. 크기는 가로 68㎝, 세로 48㎝이다.
열녀 진주정씨 정려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63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열녀 진주정씨 정려는 일찍부터 시부모와 남편을 섬겨 여인으로서의 덕목을 실천한 진주정씨의 효열정신을 잘 간직하고 있다.